외환위기 이후 주가가 부쩍 높아진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신경정신과 의사다. 저서가 베스트셀러로 떴는가 하면 금융권 및 기업의 초청 연사로도 인기다. 상담을 원하는 사람 중엔 조기퇴직과 급변하는 사회구조,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심리적 혼란을 겪는 중장년층이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오늘의 중장년층은 광복 이후 이땅 고도성장의 주역으로 개인보다 조직,자기보다 가족을 위해 허리끈을 졸라맨 세대다. 가난 탈출이 최우선 목표였던 이들에게 소비는 악덕이었다. 자신을 위해선 한푼도 떨면서 오직 자식을 위해서만 주머니를 털었다. 10∼20대가 모든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건 그런 결과다. 광고와 마케팅의 초점이 10∼20대에 맞춰지자 대중매체 또한 이를 따라갔다. TV 음악프로그램은 10대 위주의 댄스뮤직만 내보냈고,트렌디드라마에선 부모세대를 없애고,영화는 이들의 구미를 좇으려 황당무계한 엽기코미디를 양산했다. 소비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TV 등 대중매체에서 소외되면서 좁아지던 중장년층의 입지는 인터넷 확산에 따른 네티즌문화 생성과 더불어 더욱 약화됐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불어닥친 정보기술(IT) 붐은 조직과 가정을 위해 헌신해온 중장년층을 '낡고 무능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퇴출돼야 할 세대'로 왜곡,폄하시켰다. 그러나 중장년층은 험한 시대를 걸어온 만큼 어떤 변화에도 대처 가능한 잠재력을 지녔다. 자기 삶을 돌아볼 때가 된 만큼 마음만 먹으면 지갑을 열 수도 있다. 중장년층에 신용불량자가 적은 것만 봐도 그렇다. 따라서 기업들은 앞으로 이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는 소식이다. 제일기획에서 45∼64세를 사회적ㆍ개인적으로 잘 숙성된 '와인세대'(WINE:Well Integrated New Elder)로 명명,새로운 소비 가능 주체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7∼39세를 참여와 열정의 'P세대'로 이름붙였던 곳에서 1년이 안돼 중장년층에 주목,'와인세대'라는 용어를 만든 건 흥미롭다. 퇴출 대상 1호인 와인세대가 과연 주머니를 열지,그래서 와인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이 더 생기고 젊은층 대상에 95%가 배정된다는 기업광고 예산도 달라질 지 두고 볼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