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들이 투명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통해 수익성을 높여나가는 한편 납품 및 공사발주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한국가스공사와 한국가스안전공사 자산관리공사 등이 윤리경영 선포식을 갖고 '자정(自淨) 대열'에 동참했다. 과거 5년간 진행된 공공부문 개혁이 하드웨어 개혁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요즘은 전자 조달,성과관리 시스템 강화 등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 공기업은 주로 전력 가스 도로 등 민간기업이 제공할 수 없는 산업 인프라를 맡고 있기 때문에 독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민간기업과는 달리 경쟁이 없는 만큼 내부 혁신을 게을리할 경우 방만한 경영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납품받거나 하청을 주는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에 효율적인 관리 체계가 없으면 경영 자원의 낭비를 가져오기 쉽기 때문이다. ◆'이젠 윤리경영이다' 올들어 공기업 경영에서 특징적인 현상은 윤리경영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납품 및 공사발주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달 12일 '윤리경영 선포식'을 가졌으며 올해를 제2의 도약 계기로 삼을 방침이다. 이를 위해 가스공사는 회사이익 우선,금품 및 선물 수수 금지 등 모든 임직원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행동수칙으로 'Our Promise 30'을 제정했다. 또 계약 담당 직원들이 상대방과 청렴계약 이행서를 작성해 교환토록 하는 '청렴 계약제'를 도입하고 '회계처리원칙 공개제'를 통해 회계의 투명성도 높여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인사제도 모니터링 제도''부장급 주요 직위의 공모제' 등을 도입해 인사 제도의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고 부조리 신고센터인 '청음고(淸音敲)'를 온·오프라인에서 운영키로 했다. 가스안전공사도 지난달 30일 창립 30주년을 맞아 △책임경영시스템 도입 △재무회계시스템 개선 △금품·선물수수 금지 △클린신고센터 설립 △최고경영자와의 핫라인 개설 △사회봉사활동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윤리경영 방침을 세웠다. 윤리경영 실천의 맏형 격인 한국전력도 올해 윤리경영의 질적 업그레이드를 통해 '클린(clean) 경영'을 뿌리내리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한전은 이미 1996년 국내 공기업 가운데 처음 윤리강령을 제정했다. 그러나 후속 조치가 수반되지 못해 기업문화로 뿌리내리진 못했다. 이런 실패 경험을 교훈삼아 지난해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두 청렴서약서를 제출했고 각 직급과 직군을 대표하는 위원들로 윤리경영위원회도 구성하는 등 투명경영에 힘쓰고 있다. ◆공기업 윤리경영 평가 지표 마련 노무현 대통령의 공기업 윤리경영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는 점도 공기업 윤리경영을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일부 민영화한 공기업을 지목하며 "최고경영자가 전체 주주의 권익보다는 일부 지배주주나 최고경영진의 사사로운 이익을 좇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노조의 눈치만 살피는 경우도 있다"며 윤리경영을 촉구한 바 있다. 산업자원부는 공기업의 경영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난해 산업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윤리경영 평가 제도를 마련,각 부문별 우수 공기업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제 시작 단계인 공기업 윤리경영을 정착시키기 위한 평가제도 장치를 마련,공기업 수요자들이 안심하고 사업할 수 있는 확실한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다. 평가 항목에는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공헌도 △고용 평등 △원활한 노사관계 등 사회적 공헌도 △불공정 약관이나 허위광고 여부 △하청업체 또는 소비자 만족도 등이 포함됐다. 윤리경영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공기업에는 세제 지원 등 각종 인센티브를 줄 예정이다. 산자부는 우선 산자부 산하 공기업에 대해 윤리경영 현황을 평가하되 기획예산처 등 다른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모든 공기업으로 평가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공기업들의 윤리경영은 이제 선택 조건이 아닌 생존 조건"이라며 "오랜 관행과 타성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윤리경영을 하지 않으면 조직의 존재 필요성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