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 북한에 나포된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의 함장으로 포로생활 중 부하들의 생존을 돕고 귀국해 군사법정에 설 뻔했던 로이드 '피트' 부커 전 해군 중령이 별세했다. 향년 76세. 부커의 부하였으며 푸에블로호 동승자회 회장인 스튜 러슬은 부커 함장이 28일 저녁 샌디에이고 근교 포웨이의 요양시설에서 숨졌다고 밝히고 그는 포로생활의 후유증 등으로 몇 달 전부터 건강이 쇠약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경무장한 푸에블로호는 북한 해안 부근 공해상에서 북한선박의 이동 감시와 교신 감청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68년 1월 23일 북한 어뢰정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으로 수병 1명이 전사하고 82명이 포로가 됐다. 부상한 채 포로가 된 부커는 자술서에 서명하도록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었다. 러슬은 캘리포니아주 유레카의 자택에서 "그는 거인이었다"며 "북한인들과 승조원 사이의 중심이었던 그는 매사에 방패막이를 했다. 누가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그가 벌을 받았다. 나는 그가 어디서 그런 시련을 타개해나갈 힘과 용기를 얻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술회했다. 11개월 후 성탄절 이틀 전 승조원들은 석방됐는데 그들 중 일부는 다리를 절거나 영양실조로 거의 실명상태였다. 푸에블로호는 북한에 남겨져 관광대상이 됐다. 귀국한 부커는 푸에블로호를 지키지 못하고 수색을 당하도록 방치했다는 이유로 일반군사재판에 세워야 한다는 해군조사법정의 건의가 있었으나 존 채피 해군장관이 승조원들의 "고초가 그 정도로 충분했다"며 기각한 덕분에 재판을 모면했다. 부커는 사령관들이 지원을 하러 오지 않은 것을 못내 서운해 했었다. 부커는 1988년 AP통신에 "당시 미국은 서태평양에 5분내로 날아올 수 있는 거리에 막강 군사력을 배치하고 있었다"며 "우리를 도우러 오도록 무슨 조치가 취해질 줄 생각하고 있었으나 모두 한결같이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고 말했었다. 1989년 국방부는 부커와 그 승조원들에게 전쟁포로 훈장을 수여키로 합의했다. (샌디에이고 AP=연합뉴스) jk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