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과거 수없이 되풀이 되어 온 각종 정책들이 오히려 정책목표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하고,대표적인 사례 10가지를 골라 '한국경제 10대 불가사의'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우리 경제의 현주소와 대응책 강구를 위해 유익한 참고가 될 것으로 판단돼 보고서 전문을 입수,소개한다.(편집자) ◀ 한국경제 10대 불가사의 ▶ 경제민주화와 균형성장정책 기조 속에 선진화를 위한 경제개혁은 오히려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앗아갔다. 지역균형발전정책 속에 대한민국은 서울(수도권)공화국이 되었다. 도‧농 균형발전정책 속에 농촌은 더 피폐해졌다. 자원배분의 왜곡을 시정하기 위한 경제력집중억제와 균형성장정책 속에 경제력집중은 더 심화되었다. 대기업규제 속에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정책은 중소기업 경쟁력을 더 약화시켰다. 형평과 분배지향정책 속에 소득분배는 더 악화되었다. 균등교육기회를 지향하는 교육평준화 속에 초‧중‧고생의 해외유학은 더 늘어났고 서울 강남학군의 서울대 진학률은 더 증가하였다. 금융자율화 주창 속에 관치금융은 더 심화되고 은행산업의 경쟁력은 개선되지 못했다. 개혁‧청산대상인 60~70년대의 개발연대 패러다임이 한국경제의 도약, 즉 한강의 기적을 가져왔다. 우리는 지금 그 동안 불균형을 심화시켜온 그리고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켜온 정책들을 더 강화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경제는 20세기에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에 성공한 몇 안되는 경제중의 하나다. 인구의 규모로 볼 때 한국경제의 이륙은 “국가다운 규모”의 경제로서 유일한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동안 한국경제는 많은 우여곡절 속에 변화를 겪어왔다. 특히 한국은 강력한 가부장적 정부하에서 경제개혁의 실험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각종의 개혁실험을 해왔다. 최근들어 한국경제에 대해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아시아 4龍중 홍콩, 싱가포르가 이미 1인당 소득 2만불대에 진입한 반면, 우리나라 경제는 여전히 1인당 소득 1만불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으며 대만마저도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 더구나 높은 일본 기술수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세계공장으로서의 흡입력 속에 한국경제가 함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신산업이 자라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하에 정부가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을 육성한다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형편에 이르렀다. 그 동안 각종 기업규제와 노사관계 등 기업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기업들의 위험부담을 통한 새로운 산업에의 도전정신이 실종된 것이 주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정부의 기업정책 특히 경제력집중규제에 기초한 대기업규제정책은 달라지지 않고 있으며, 이제는 소위 기업지배구조의 후진성이 모든 경제문제의 원인인 양 또 다른 규제명분으로 부각되면서 기업가정신의 실종현상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처럼 보인다. 한국경제는 어디를 항해해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지난 80년대 후반이후 15년여 동안 경제개혁을 외치면서 질주해온 결과는 무엇인가? 그 동안 추구한 개혁의 목적은 달성되었는가? 지난 15년간의 경제적 성과를 각종 지표를 가지고 평가해 보면 불행하게도 우리는 개혁이 지향했던 선진화를 아직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재성장능력, 생산성, 기업수익률 등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측정하는 모든 지표들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한국경제호가 그 동안 표류하고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경제호의 더 이상의 표류를 막기 위해서는 그 동안의 항해를 되돌아보고 현 좌표를 재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이에 다음과 같이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문제를 10가지로 정리해서 정책당국자들이나 학계의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경제민주화와 균형성장정책 기조 속에 선진화를 위한 경제개혁은 오히려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앗아갔다. - 1987년 제9차 헌법개정은 경제기본질서 119조 제2항을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개정하였으며, 그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공정거래법을 통한 대기업규제를 비롯하여 경제민주화와 균형성장정책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 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성장잠재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 1990년 중반 이후 1인당 GDP는 1만불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 -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은 실종되고 산업공동화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기업들의 미래산업 창출 노력은 실종되었다. ① 균형 및 질적 성장을 추구해온 경제개혁 속에 한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더 떨어지고 있다. - 총요소생산성증가율은 64~87년 기간중 연평균 5.6%를 보였으나 88~2000년 기간중에는 3.5%로 하락하였다. (자료: KDI, 한국경제의 성장요인 분석: 1963~2000) ② 기업경쟁력강화정책 속에 상장기업의 수익성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던 88년 이전기간(70~87)의 제조업부문의 자기자본경상이익률과 매출액경상이익률은 각각 15.0%와 3.0%이었으나 그 이후기간(88~2002)에는 그 수치가 각각 6.8%와 1.8%로 절반 가까이 하락하였다.(자료: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③ 노사평등 및 화합을 강조해온 경영민주화정책 속에 노사관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87년 3,749건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외환위기를 맞은 97년에는 78건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중 노사분규건당 손실일수는 3.1배(87년 1,853일→97년 5,702일), 노사분규건당 생산차질액은 51.9배(87년 7.4억원→97년 383.7억원)나 증가했으며 노사분규손실일당 생산차질액도 87년 40만원에서 97년에는 670만원으로 약 17배 상승하였다. - 외환위기 이후에는 노사분규 발생건수가 98년 129건, 2000년 250건 그리고 2002년 322건 등으로 다시 상승하고 있으나 발생건당 손실일수와 생산차질액은 다소 둔화되고 있다. (자료: 노동부) 지역균형발전정책 속에 대한민국은 서울(수도권)공화국이 되었다. -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경제적 비중은 85년 GDP의 42%에서 2002년 47.7%로, 인구 역시 85년 39.1%에서 2002년 46.7%로 증가하였다. ① 지방대학육성정책 속에 지방대학의 특성화는 실종되고 지방대 졸업생의 경쟁력은 오히려 약화되었다. 도·농 균형발전정책 속에 농촌은 더 피폐해졌다. - WTO가입 이후 농촌구조조정을 위한 52조 이상의 농촌지원에도 불구하고 농가소득의 도시근로자소득에 대한 비중은 1995년 95.1%에서 2002년 73.0%로 크게 떨어지고, 농가빈곤율도 도시빈곤율에 비해 1999년 1.9배에서 2001년 2.7배로 늘어났다. - 또한 농가호당 부채는 1995년 9백만원에서 2천만원 가까이로 증가했으며, 농가소득대비 부채비율은 1995년 42%에서 2002년 81.3%로 증가하였다. 자원배분의 왜곡을 시정하기 위한 경제력집중억제와 균형성장정책 속에 경제력집중은 더 심화되었다. - 전산업에서 30대 대그룹, 5대 대그룹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은 1986년 각각 39.3%, 21.7%에서 2001년에는 51.5%, 25.0%로 각각 증가하였다. 대기업 규제 속에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정책은 중소기업 경쟁력을 더 약화시켰다. - 중소기업육성의 필요성은 경제균형발전과 동시에 기계, 부품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산업경쟁력 향상과 대일무역적자를 해소한다는 목적 하에 강조되었다. 그러나, - 기계산업의 대일 무역수지적자는 1987년 68억달러에서 1997년 97.7억달러로 늘어났다. 외환위기 이후 다소 개선을 보였으나 다시 더 악화되고 있다. - 전산업의 대일 무역적자는 1987년 52.2억달러에서 1997년 130.6억달러로 크게 확대되었으며, 외환위기 이후 일시적 개선 이후 더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 우리 경제의 소재·부품 외국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지면서, 우리 수출의 외화가득률은 1995년 69.8%를 정점으로, 2000년 63.3%를 기록해 20년 전 수준(1980년 63.1%)으로 악화되었다. 형평과 분배지향정책 속에 소득분배는 더 악화되었다. - 상대적 소득분포에 따른 가구분포를 보면 상류층은 1994년 21%에서 2001년 22.7%로 증가하였고, 중산층은 같은 기간에 70.2%에서 65.3%로 크게 낮아졌으며, 빈곤층은 같은 기간에 8.8%에서 12.0%로 크게 늘어났다. - 지니계수에 의해 측정된 소득불평등도는 1980년대 이후 1990년대 초까지 꾸준히 호전되다가 90년대 중에는 정체 혹은 다소 악화되고, 99년 이후 크게 악화되고 있다. 균등교육기회를 지향하는 교육평준화 속에 초·중·고생의 해외유학은 더 늘어났고 서울 강남학군의 서울대 진학률은 더 증가하였다 - 초‧중‧고 단독 해외유학생은 98년 1,562명에서 2002년 1만 132명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부모동행 유학생은 2002년에 2만 8,126명에 이르고 있다. - 1980년대 중반이후 2003년까지의 강남 8학군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입학률은 서울평균의 1.5배, 전국평균의 2.5배에 달했다. ① 대학교육기회의 확대와 하향 평준화된 교육 속에, 고학력 대졸자들은 양산되었으나 학력은 오히려 저하되고 삶의 질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대졸 청년실업은 급증하고 있으나 대졸자의 중소기업 취업 기피로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봉착하고 있다. ⋅대졸자가 과거 고졸자의 직종에 취업하기도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금융자율화 주창 속에 관치금융은 더 심화되고 은행산업의 경쟁력은 개선되지 못했다. - 정부는 1990년대 이후 꾸준히 금융자율화를 추진해 왔다고 주장하나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하는 금융부문의 경제자유도에 따르면 관치금융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으며, 외환위기 이후는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다. - 은행산업의 경쟁력은 ROA기준으로 90년대에 계속 악화되어 왔으며 2001년 부실채권정리 이후 다소 개선되었으나, 국내 외국계 은행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불가사의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3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첫째로는 개혁의 목적 즉, 경제민주화와 형평 그리고 균형성장의 달성이 원천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이거나, 둘째로 이 목표는 달성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달성을 위한 정책이 잘못되었거나, 셋째로는 목적과 정책이 옳다하더라도 정부가 말만하고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아마도 이상과 같은 이유들을 점검하여 필요하다면 개혁목표를 재정립하거나, 정책수단을 재정비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이들 개혁정책들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실행체제를 재정비해야 할 때이다. 특히 그 동안의 개혁의 목표와 개혁정책의 타당성을 점검하고 향후 개혁의 목표와 정책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개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이전으로 돌아가 한국경제 도약(take-off)의 성공요인을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혁‧청산대상인 60~70년대의 개발연대 패러다임이 한국경제의 도약, 즉 한강의 기적을 가져왔다. - 개발연대 패러다임은 이젠 바뀌어야 할, 아니 이미 지나간 패러다임이다. - 그러나 30년간 연평균 8%가 넘는 GDP 성장을 가져온 한국경제의 도약, 즉 한강의 기적도 지울 수 없는 경제사적 기록이다. - 개발연대 패러다임의 어떤 요소가 성공의 요인인지에 대한 규명이 없이는 한국경제의 개혁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 왜냐하면 개혁이란 과거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고쳐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에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배우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총체적 부정이 보다 개혁적이라는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 과거 우리가 이루어 놓은 성과는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신기루 같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개혁적인 것처럼 치부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이러한 지적풍토는 또 다른 불가사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동안 불균형을 심화시켜온 그리고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켜온 정책들을 더 강화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 참여정부는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를 국정목표로 설정하고 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였다. - 시장개혁 로드맵은 시장규율을 강화한다하면서도 여전히 개입위주의 기업규제정책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경제력집중규제정책의 지속과 “기업지배구조”의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기업경영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제는 “시장실패” 대신에 “기업지배구조 후진성”이 정부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 노사관계 로드맵을 통해 경영민주화가 강화되고 있다. - 최근의 119조 농어촌지원계획도 WTO가입 이후의 농업지원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교육평준화로 인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그 개선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 금융산업의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규제 등 금융규제와 금융기업의 퇴출여부에 대한 개입 등 금융개입이 지속되고 있다. 이상의 불가사의한 결과들을 볼 때 그 동안 경제민주화, 균형성장, 분배정의의 기치아래 시행된 각종 개혁조치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동안 “상투적인 생각(Conventional Wisdom)”, 즉 “민주, 평등, 균형”과 같이 뜻과 이상만 좋으면 그 수단은 무엇이든,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심각한 고민도 없이 그저 늘 하던 대로 개혁을 외쳐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때이다. “민주, 평등, 균형”을 위한 개혁의 높은 이상 속에 혹시 사람이 사는 평범한 이치를 망각한 개혁을 해 오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때이다. 사람은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열심히 살고자 하는 것이다. 기득권층이라는 이름하에, 열심히 산 사람들이 평생을 이루어 놓은 성과를 일거에 부정해 버리는 식의 개혁은 그 동안 한 세대를 최선을 다해 살아온 국민들을 슬프게 만들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예컨대 성공했던 정치인이나 고관대작, 대기업이나 부자들 심지어는 서울 강남 사람들까지 소위 잘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폄하 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이 사회가 역동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통합의 개혁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또한 사람은 남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시혜를 받게 되면 나태해진다는 것이 또 다른 평범한 삶의 이치이다. 소위 “도덕적 해이”라는 것이다. 농촌도, 지방도, 지방대학도, 중소기업도, 근로자도, 실업자도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도 정부의 무조건적인 시혜와 보호·지원에 물들면 안주하게 된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개혁이 아무리 좋은 뜻과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기대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좋은 뜻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려면 정부는 언제든 “민주, 평등, 균형”이라는 이름하에,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의지를 꺾어서도 안되며, 지나친 자비로 국민들의 나태함을 조장해서도 안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같이 정부 또한 스스로 돕는 자를 돕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