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비뚤어진 문화를 상징하는 용어 중 '이지메'(집단 따돌림)는 한국 사회에 가장 널리 알려진 말 중 하나다. 특정인을 무리 지어 따돌리고,학대와 조롱을 서슴지 않는 이지메는 사람이 관련된 각종 사건의 원인으로 단골처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지메의 표적은'튀거나,처지거나,낯선 사람'이다. 일본 전자업계의 간판 메이커 소니가 묘한 결단을 내렸다. 경제산업성이 주도하고 기라성 같은 일본 기업과 대학이 다수 참가한 차세대액정패널 개발 프로젝트에서 스스로 이름을 뺐다. 표면적 이유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합작으로 액정 패널을 생산키로 했으니 취지에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니의 행동에는 그럴 만한 사유가 있다. 박형TV의 사업 확대를 머뭇거리다 타 메이커들에 한참 뒤진 상태라 기술축적이 앞선 삼성전자를 발판으로 가속페달을 밟는 것이 실리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다. 또 하나는 열린 사고다. 자본과 기술의 국경이 무너진 상태에서 한 울타리만 고집하며 일본 기업,일본 기술에 매달리느니 장사만 된다면 호흡을 맞추지 못할 외국 기업이 어디 있느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개운치 않은 것은 일본 언론의 행간 뉴스다. 경제산업성은 소니와 삼성전자의 합작에 대해 기술의 해외유출 가능성이 있다는 투로 부정적 사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들과 손 잡으면 프로젝트의 내용이 흘러갈 염려가 없겠느냐는 식이다. 경제산업성의 태도는 다른 기업들과 대학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 곁에 선 소니를 경계하고,거리를 두는 잠재적 집단 따돌림이 싹텄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산업 현장이 부쩍 활기를 되찾으면서 일본 재계에서는'기술 최우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에 패한 반도체의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할 수 없다며 정부와 학계도 절치부심 힘을 합치고 있다. 소니의 민관 프로젝트 탈퇴는 이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거울일 뿐이다. 소니를 경유해 날아 온 견제,타도의 화살을 한국 정부와 산업계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