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어려웠던 시절 선뜻 저를 믿고 돈을 빌려준 전당포 주인을 찾습니다" 고교를 졸업한 지난 1977년 브라질로 이민해, 최근 성공한 사업가로 귀국한 황석하(48.Raf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씨. 그는 시계방에서 견습생으로 시계수리기술을 배우던 1977년 당시로는 거금인 2만원을 선뜻 빌려준 서울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의 전당포 주인을 찾기 위해 30년전기억을 더듬어 수소문하고 있다. 1956년생인 그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돼 서울 공덕동 로터리의 한 시계방에서 1년간 시계수리기술을 배우다 은인을 알게된 것. 가난했던 시절, 그는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마다 시계방 건너편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돈을 만들어 쓰곤 했다. 자주 전당포에 들러 쑥스러운 미소를 짓던 그는 주인의 귀여움을 받았고, 전당포 사람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그러다 브라질 이민을 석달여 앞둔 어느 날 시계방 주인이 "급전이 필요하다"며시계를 하나 주면서 전당포에 시계를 맡기고 제값을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당시 저당잡히는 물건의 값을 제대로 처주지 않는 게 전당포의 관행이었지만 전당포 주인은 그의 간절한 부탁에 당시 저당잡힌 시계의 시가에 해당하는 2만원을 빌려줬다. 석달 후 이민을 떠난 그는 브라질에 가서 시계방을 차려 자리를 잡았고, 4년만인 1981년 귀국하자마자 그의 스승인 시계방 주인을 찾아갔다가 전당포 주인에게 진빚 2만원을 여전히 못 갚은 사실을 확인했다. 그 길로 곧장 전당포를 찾았으나 그 자리에 서 있던 과거 건물들이 모두 헐려없어진 것을 보고 낙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브라질로 돌아간 뒤 전당포 주인이 견습공에 불과했던 나를 믿고 선뜻 2만원을 내주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며 "`꼭 갚겠다'던 약속을 못지키다니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브라질로 돌아간 그는 시계방에 이어 봉제공장과 의류도매업체를 운영하다 지난1995년 브라질에 `Raf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한국산 노래방 기계를 브라질 시장에팔아 큰 돈을 벌었다. 1990년대 이후 사업차 두 달에 한번 꼴로 한국땅을 밟는 그는 빌린 돈 2만원의100배인 200만원을 가슴 속에 품고 당시 공덕동 인근에 살고있는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전당포 주인을 수소문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그 돈을 갚아야 내 마음이 편해질 거 같은데...아직도 성공하지 못했다"라며 "어려웠던 견습공 시절 `나'라는 사람 하나만 믿고 거금을 빌려준 신뢰를 배신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 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