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사안이니 국민은행도 채권액에 상당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은행 : "지금 손해만도 상당하다.어차피 국가적 문제라면 정부가 해결한다는 입장에서 산업은행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주주들 눈도 있고…." 산업은행 : "우리는 채권도 얼마 안 되는데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 부도 직전의 위기에 몰린 LG카드 문제에 대한 3자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는 '리딩 뱅크'인 국민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들이 LG카드 인수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길 바라지만,국민은행이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교통정리'를 주문하며 버티는 가운데 산업은행에 '짐'이 점점 더 쏠리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국가의 중대 현안을 두고 국민은행에 '사정'하는 것 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씁쓸해 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정부의 '업보'도 적지 않다. 외자유치와 합병을 통한 은행 대형화,수익성 중시 등을 은행 경영의 모토로 삼았던 정책이 부메랑이 돼 금융정책의 손발을 묶어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 정책의 실패를 문제 삼더라도 '시장논리대로 LG카드를 부도처리하거나 정부가 책임지라'는 식의 국민은행의 태도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금융에 치중했던 선발 은행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면서,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작은 소비자금융에 주력해온 덕분에 '벼락 스타'가 됐다는 시선을 받아온 터다. 일반 기업과 달리 은행을 여전히 금융 '기관'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최소한의 공공적 기능에 대한 기대치의 반영이다. 그런 은행업계의 선도 기관이 '주주가치 논리'만을 앞세우며 국민경제를 소홀히 보는 듯한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민은행이 발을 빼는 만큼 산업은행이 더 발을 깊숙이 담가야 하는 게 시장논리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애초에 채권이 별로 없던 산업은행은 등 떠밀려 부실을 떠안아야 하고,국민은행은 채권액에 따른 책임조차 지지 않는다는 것이 시장논리일까.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