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파병예정지 키르쿠크의 종족갈등이 심상찮은 기세로 전개되고 있다. 다수 종족인 쿠르드인들이 키르쿠크의 쿠르드 자치지역 편입을 요구하고, 경쟁부족인 터키계와 아랍계가 강력히 반발하는 형태로 전개되는 이 분쟁은 자칫 유혈사태로 번질 수 있는 폭발력을 지녔다. 양호한 치안문제 등을 고려해 이곳을 파병지로 선택한 한국으로서는 종족분쟁이란 뜻하지 않은 변수가 성공적인 임무수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쿠르드족 자치지역 요구 = 쿠르드인들은 키르쿠크가 역사 지리적으로 쿠르디스탄 고원의 일부에 속하는 민족적 요충지라며 이곳을 쿠르드 자치지역에 편입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탈랄 잘라바니, 마수드 바르자니 등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내 쿠르드족 대표들은 미국측에 `쿠르드족의 목표는 자치연방 수립'임을 선언하고 2005년 정식선거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쿠르드지역에 자치 정부를 세우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자치지역엔 기존의 북부 3개 주 이외에 키르쿠크 등이 포함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미국의 폴 브리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은 이에 대해 `지금은 때가 아니니 좀 더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밝혔으나 쿠르드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22일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최고 1만여명에 달하는 시위대는 키르쿠크가 쿠르드족의 민족적 요충지임을 강조하며 이 곳의 자치지역 편입을 요구했다. ▲터키, 아랍계의 반발 = 경쟁 부족인 터키와 아랍계는 쿠르드계의 자치지역 편입 요구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터키와 아랍계는 쿠르드인들의 시위가 열린 22일 합동 모임을 열어 쿠르드지역 편입 운동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이라크 터키인 이슬람전선(IIFT)의 사미 도넴스 의장은 23일 아랍어 위성방송 알 자지라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키르쿠크의 쿠르드지역 편입에 반대한다"며 "그런 구상과 계획은 이라크의 분열을 불러올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투르크인 대표인 상콜 자복 위원도 브리머 행정관과 만나 "키르쿠크는 지금까지와 같은 다인종 다종파 사회로 남을 것"이라며 "키르쿠크의 쿠르드 편입 시도는 석유를 작악하기 위한 음모"라고 비난했다. ▲전망 = 쿠르드계와 터키, 아랍계의 충돌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모습니다. 쿠르드계와 터키, 아랍계 학생들은 23일 키르쿠크 전문대학에서 국기게양 문제를 놓고 충돌, 부상자가 발생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날 충돌은 쿠르드인 학생들이 이라크 국기의 게양을 거부하자, 학장이 쿠르드, 터키계, 이라크 국기를 동시에 내리라고 지시했으나 쿠르드계 학생들이 거절하면서 일어났다. 학생들의 충돌과정에서 경찰관이 부상하고 학생과 주민 20여명이 체포됐다. 전문가들은 키르쿠크 종족분쟁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우며 자칫 대형 유혈사태로 번질 가능성마저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오랜 억압을 받아온 쿠르드인들은 지금이 자치지역을 넓힐 수 있는 호기라고 판단, 대규모 시위를 비롯한 물리력 행사를 불사할 태세이다. 그러나 터키, 아랍계는 쿠르드지역 편입을 자신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로 보고 강력한 저항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또 터키가 쿠르드족의 자치 확대 요구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 확실시돼 문제가 국제분쟁화할 우려마저 있다. 이라크의 한 정치 분석가는 "쿠르드인들이 자치지역 편입 운동을 본격화하고 터키, 아랍계가 이의 저지에 나설 경우 양측간에 유혈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아주 크다"며 "키르쿠크가 팔루자나 라마디보다도 위험한 지역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바그다드=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