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Road Map, Load Map..윤기설 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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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개혁 로드맵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로드맵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는커녕 노사갈등을 부추겨 오히려 '나라경제를 거덜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로드맵(Road Map)의 첫 철자를 'L'로 바꿔 '로드(Load·짐)'맵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사실 노사관계를 처리하는 정부의 현실인식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하루이틀 된 것도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불법파업이 계속됐지만 정부는 언제나 주문처럼 대화와 타협이라는 말을 되풀이해 왔다.
노사관행의 대수술이 시급한 때지만 정부는 로드맵이라는 이름의 흐릿한 청사진을 내놓으며 책임을 비켜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로드맵은 잘못된 노사관행을 뜯어고치기 위한 본질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지금까지 노사가 요구해온 사항들을 적당히 버무려놓은 '비빔밥'같은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노동계가 반발하면 노동계 요구를 더 수용하고 재계가 발끈하면 재계 입장을 더 반영하면서 적당히 절충해 놓은 식이다.
툭하면 청와대나 정부관계자가 '네덜란드식 모델'이 어떻고 '아일랜드식 모델'이 어떻고 하면서 '모델 타령'을 하고 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이다.
모델은 모델일 뿐이지 의식과 관행을 바꿀 처방전은 아니다. 이미 지난 98년 노사정위원회가 선진국의 사회적 합의모델을 본떠 설립되어 있는 터다.
많은 국민들이 정부의 노동정책기조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도 이처럼 맥을 잘못 짚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로드맵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학자 스스로가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을 공개비판했을까.
이 학자는 최근 모 인터넷신문을 통해 "노사 어느쪽도 노동법개정(로드맵)을 적극 요구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핵심 이슈로 삼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절차"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시급한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엉뚱한 데 시간을 소모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시켰으니 일은 하지만 방향은 잘못되었다는 양심고백인 셈이다.
노사정위 관계자들도 이러한 지적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노사정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정부가 성급하게 로드맵을 추진했기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반발"이라고 말했다.
집권 초반에 포퓰리즘적 정책을 펼치며 노동계의 불법파업을 방치했던 참여정부가 이제는 로드맵이라는 새로운 메뉴로 노사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들이다.
정부의 비현실적이고 무감각한 상황인식은 로드맵 곳곳에서 발견된다.
고정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느닷없이 포함시키기로 한 대목은 노동부 공무원들조차 당혹해하던 사안이다.
그러나 로드맵을 작성한 학자나 노동부 담당자는 "법 개정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삭제하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흐름은 결과적으로 대화와 타협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보다는 불법과 편법이 판치는 '사회분열적 노사관계'를 유도할 소지가 많다.
지금은 경제위기 상황이다.
그때 그때의 말잔치나 코드에 맞는 사람들만으로 국정을 운영할 만큼 한가한 시점이 아니다.
노동전문가를 자처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재계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네' '말이 많아 슬픈 노무현이여'같은 비난들은 다른 곳도 아닌 참여정부의 우군이던 민주노총이 쏟아낸 비난성명이다.
여기에는 권기홍 노동부 장관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노동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등의 친노(親勞)적 발언은 노사 갈등에 불을 댕긴 측면이 없지 않다.
조만간 개각도 있고 로드맵의 정책 방향도 확정된다.
국가 경제라는 보다 큰 틀에서 선택과 집중이 이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