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LG카드 해결사로 나설 것이란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였다. 박 전 부총재는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매각,대우그룹 워크아웃,현대상선 구조조정을 책임졌던 사람이다. 외환위기 이후 굵직한 부실기업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갔다. 산업은행을 출입한 기자들에게 박 부총재와 구조조정 전담 멤버들은 아주 인상적인 인물들로 남아 있다. 국내외 채권자들의 무수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물론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게 전적으로 산업은행의 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팀의 주도적 역할 덕분에 대우자동차 현대상선 대우종합기계 대우조선 등은 회생을 넘어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구조조정 팀 멤버들에게 남은 건 별로 없다. 모 팀장은 "성격 좋았던 사람들도 이 팀에만 오면 성격 다 버린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하소연은 이렇게 이어졌다. "다른 채권자들과 노조·회사·하청업체 관계자들과 싸우는 게 일입니다. 한마디로 싸움닭이 되는 거지요. 집안에서도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고 스트레스 풀려고 소주 한잔 하고 새벽에 들어갔다 아침에 출근하면 거의 사람 취급 못 받습니다. 기관이나 노조에서 한밤중에 집으로 찾아오면 가족들도 불안에 떨게 됩니다." 산업설비 자금 금융 등을 둘러싸고 이권을 챙기며 이른바 '온탕'을 즐기다 산업은행에 '비리의 복마전'이라는 불명예를 씌운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남들이 기피하는 '냉탕'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챙기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 '냉탕맨'들이 죽도록 일한 데 대한 보상은 따로 있을리 없다. 박 전 부총재는 현대상선 대북송금 사건에 휘말려 옷을 벗는 운명을 맞기도 했다. LG카드 인수자가 없으면 산업은행이 맡게 될 것이라는 발표를 접하며 이런 일련의 과정을 떠올려 봤다. 만약 산업은행이 LG카드를 살린다면 이들에게는 어떤 보상이 돌아갈지 궁금하다. 한 직원은 "감사원이나 금감위에서 감사(검사)받고 징계나 안먹으면 다행"이라며 씁쓸해했다.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