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난로를 들여놓고 나란히 누운 다섯 식구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가장인 주동만씨가 생활고를 감당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연탄가스가 방안에 가득찰 무렵 큰 아들이 갑자기 울음보를 터뜨렸다. "죽을 결심으로 다시 살아보자"고 두팔에 매달렸다. 연탄난로를 바깥에 내다놓고 주씨는 펑펑 울었다. 20여년전의 이야기다. 경기도 안성을 본거지로 탄생한 '모박사 부대찌개'(www.mamadoctor.com,031-675-5288). 주동만 사장(61)이 모박사 부대찌개를 개발한 장본인이다. '모박사'란 이름엔 부인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다. 성이 모(毛)씨인 부인을 박사처럼 존경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주 사장의 장사 인생은 14세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인 충남 천안에서 행상,옷가게 점원,공장기술자,책 도매상 등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에든 손을 댔다. "6·25전쟁 직후라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었지요.먹고 사는게 급해 안해본 일이 없이 온갖 장사에 다 손을 대봤어요.덕분에 열 다섯살 때 처음 적금에 들어봤습니다." 10대에 처음 시작한 행상은 20대로 이어졌다. 제대후 곧바로 결혼했지만 일자리가 있을 턱이 없었다. 부인은 당시 천안경찰서 수사과장의 딸. 어울리지 않은 결혼이란 눈총을 받았다. 그럴수록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밀려왔다. 닥치는대로 일했다. 버스와 열차안이 그의 장사 무대였다. 손톱깎이,빗,호두과자 등 잡다한 물건을 팔아 돈을 모았다. "행상으로 모은 돈을 밑천삼아 책 도매상을 했어요.교재 참고서 소설 백과사전 같은 덤핑 책을 사들여 충남 서산 당진 장항 등지를 돌아다니며 팔았는데요,이익이 짭짤해서 돈을 꽤 모았지요." 이번에는 좀 자신이 붙어 사업을 좀 더 확대했다. 그러나 이게 악수였다. 가진 돈을 몽땅 말아먹었다. 허탈한 심정에 고향을 떠나기로 했다. 아이들도 3명으로 불어났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타향인 안성에 올라와 또 다시 행상을 시작했지요.장사가 안될때는 점심도 굶고 허기져서 논두렁에 쓰러진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지요." 연탄가스 자살소동을 벌인게 바로 이 무렵. 그런 일이 있고난 뒤 더욱 악착같이 장사에 매달렸다. 떠돌이 생활이 지겨워 만화방을 차렸다. 70년대초 주씨의 50평짜리 만화방은 안성에선 규모가 큰 편이었다. "당시 만화방의 베스트셀러는 이현세의 까치와 박봉성의 기업만화였어요.우연히 기업만화를 보다가 만화 스토리가 내 인생과 너무 닮아 깜짝 놀랐지요.장사를 하든,사업을 하든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도 이때였습니다." 어느덧 나이도 4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음식점 장사를 하기로 하고 안성 변두리에 점포를 물색했다. 처음엔 임대했고 나중엔 아예 사버렸다. 자동차가 점점 많아지고 도시 주변 도로가 넓어지는 추세여서 변두리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이 자리에서 16년간 음식점 장사에 매달리고 있다. 음식점 초기에는 기사식당 간판을 걸고 부대찌개,삼계탕,해장국,제육볶음 등 다양한 메뉴를 취급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큰 돈이 안됐다. 밥벌이에 그치는 정도였다. "한가지로 일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그래서 부대찌개 맛을 나름대로 개발해 승부를 걸기로 했지요.부대찌개로 메뉴를 단일화 하자 처음엔 매출이 줄다가 1년정도 지나니까 매출이 껑충 뛰는 것이에요.바로 이거다 싶어 무릎을 쳤어요." 주 사장이 개발한 부대찌개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가맹점을 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가맹비 5백만원씩 받고 기술을 전수해주다보니 1년만에 20개가 넘어섰다. 지역도 수도권에서 충남 전북 경남북으로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 외에 본사가 요구하는건 없어요.다만 부대찌개의 주 재료인 햄이나 소시지는 본사가 지정하는 최고급 물품만 받아야 합니다.안그러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기 때문이죠." 개인 식당에서 프랜차이즈 본사로 영역을 넓히면서 일손이 달렸다. 공무원을 하던 장남이 맨 먼저 합류했다. 최근에는 차남과 딸,사위까지 잇따라 주 사장 일을 돕고 있다. 사업확장에 따라 가족기업으로 변모한 셈이다. "현재 10억원을 들여 본점 신축공사를 하고 있는데요,그야말로 카페같은 식당입니다.6천원짜리 부대찌개도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을 손님들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글=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