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금 5%만 내면 최장 48개월까지 원금을 유예해 드립니다.'


쌍용자동차 딜러인 P씨는 5일 렉스턴과 무쏘스포츠를 이런 조건에 판다는 홍보전단을 서울 신당동의 한 아파트 내 주차 차량에 꽂아두었다.


2천만원짜리 렉스턴을 살 때 1백만원만 인도금으로 내고 이자만 꼬박꼬박 내면 나머지 차값은 4년 뒤 갚아도 좋다는 얘기다.


P씨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몇마디 오가자 48개월은 당장 60개월로 늘어났다.



쌍용차를 팔고 있는 또 다른 딜러는 렉스턴의 경우 선수금 40% 이상을 내면 36개월 무이자로 차를 팔고 있다.


회사의 연말 판촉 프로그램에는 선수율이 50%가 넘어야 3년 무이자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영업 현장에서는 고객에게 한층 유리한 조건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극심한 내수 부진으로 무더기 재고를 안고 있는 자동차 업체와 영업점들이 연말까지 재고를 털기 위해 파격적인 판매조건을 내걸고 있다.


일각에서는 존폐 위기에 몰린 딜러들의 사활을 건 출혈 경쟁까지 가세, 시장질서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2003년형 SM5 가격을 최고 1백50만원씩 깎아주고 있다.


2003년형 SM3도 1백10만원 할인해 준다.


1만3천5백대나 쌓여 있는 재고를 털기 위해 직접적인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르노삼성은 SM5를 재구매하는 고객에게는 36만원 상당의 조수석 에어백을 장착해 주고 있다.


더 이상 수단이 없어 차 값을 못깎아주고 있는 형국이다.


다른 차 메이커들도 마찬가지.


2003년형 장기 재고는 수백만원씩 할인해주고 있다.


공식 판매 조건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영업소를 돌다보면 2003년형에 한해 현대자동차 그랜저XG 2백만원, 기아자동차 리갈과 옵티마도 2백만원씩 깎아준다.


GM대우의 매그너스와 레조 2003년형도 평균 10%가량 싸게 살 수 있다.


여기에 각종 카드와 연계한 할인혜택까지 감안하면 고객이 누릴 수 있는 할인 효과는 더 커진다.


연말 마케팅 총력전의 하나로 무이자할부제도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무이자할부 불가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던 현대차도 트라제XG와 스타렉스는 1천만원까지 30개월 동안 무이자로 팔고 있다.


GM대우는 선수금으로 차 값의 40%를 내면 30개월까지 무이자 할부를 적용해 준다.


쌍용차도 선수금으로 30%를 내면 24개월까지 무이자 할부혜택을 받을 수 있다.


GM대우는 선수금을 15%만 내면 30개월간 할부금리를 1%만 적용해 주는 1% 할부제도를 도입했다.


당장 현금 사정이 좋지 않은 고객을 위한 할부금 유예제도도 다양하다.


현대차의 CS할부제도는 차값 10%만 미리 내고 매달 10만원씩 6개월간 내면 18개월까지 할부금을 유예해 준다.


그동안은 할부 이자만 내면 된다.


GM대우의 실속할부는 최초 1년간 할부금을 내지 않고, 1년 뒤부터 3년간 분납하는 제도다.


이같은 파격 조건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딜러들이 폐점을 고려할 정도로 고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난 11월 한달 동안 대부분의 딜러들의 판매실적은 작년 같은 달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직영점과는 달리 기본급이 전혀 없는 딜러 영업사원들은 기초 생활비를 벌기에도 빠듯한 실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판매 조건이 좋은 데도 차가 안 팔린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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