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소가 3일 밝힌 '상장법인 인수비용 현황'은 국내 기업이 인수·합병(M&A) 위험에 얼마나 심각하게 노출돼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전체의 50%+1주)을 인수하는 데 1천억원 이상 들어가는 상장사가 17.6%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인수가능 금액이 1천억원 미만인 상장사 가운데선 상당수 우량 기업이 포함돼 있다는 게 거래소측 설명이다. 주요 그룹 중에선 한화 금호 코오롱 동양 등이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금호그룹의 4개 주력 상장사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총 1천1백28억원에 불과하다. 사실상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50%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6백40억원선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대주주 지분율이 27%에 머물러 외부 세력이 4백억원 이상을 투입,지분 30%만 사들이면 금호석유화학은 물론 그룹 전체의 경영권에 이상기류가 생길 수 있다. 최근 M&A 논란을 빚고 있는 현대그룹 모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도 9백98억원 정도를 들이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코오롱그룹 지주회사격인 ㈜코오롱도 안정적인 경영권을 인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5백69억원에 머문 것으로 조사됐다. 이 회사도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실제 경영권 확보 가능 금액은 3백70억원 수준이란 게 증권업계 분석이다. 동양그룹 모회사인 동양메이저의 경우 안정적인 경영권 인수에 드는 자금이 1백65억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우량 상장사들 중 경영권 인수가능 금액이 1백억원 미만인 곳도 적지 않다. 최근 지주회사 체제로 출범한 대웅은 경영권을 노리는 외부 세력이 90억원만 투입하면 이 회사 지분 절반을 인수,대웅제약 대웅화학 등 우량 자회사까지 한꺼번에 거느릴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보해양조는 총자산가치가 2천억원을 넘지만 37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최근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주주간 갈등을 빚은 한국금속도 경영권 인수에 필요한 자금이 30억원 이하라는 게 증권거래소 설명이다. 경영권 인수금액이 10억원도 안되는 상장사도 범양식품 등 3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주식 매수로 유통물량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주가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시장의 관심을 끌지 못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우량 중소형주들은 M&A 가능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