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지난 9개월간 북한 핵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중국의 역할 변화다. 중국은 세계 안보현안에 대해 소극적이던 전례를 깨고 파국으로 치닫던 미국과 북한 당국을 달래는 데 성공,자국 지식인들까지 놀라게 했다. 1차 6자 회담을 성사시킨 데 이어 협상 모멘텀이 끊기지 않도록 외교관들을 워싱턴과 평양에 번갈아 보냈으며,북한에 대한 석유공급 일시 연기와 선박 수색 같은 고압적인 수단까지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외교는 최근 대담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북핵 문제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지역 및 세계 현안을 다룰 때 중국의 태도는 더욱 세련되어지고 자신감이 붙었으며 때로는 건설적이고 혁신적이기까지 하다. 중국 외교의 가장 극적인 변화중 하나는 국제기구 가입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국은 이런 모임들을 중국을 압박하는 도구로 비난했으나 이제는 국제질서를 형성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부상이 지역 경제 및 안보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설득하기 위해 일련의 계산된 조치들을 적극 취하고 있다. 2001년 중국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간 자유무역지대 설립을 제안했고 남지나해 섬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남지나해 행동 규범'에 서명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국경무장해제와 테러리즘 및 무역분쟁 해결을 논의하기 위한 '상하이협력기구'설립을 주도했다. 또 98년부터 유럽연합(EU)과 정기 연례 회담을 시작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해서도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연례 모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뿌리깊은 영토 분쟁에 대한 입장도 달라졌다. 91년 이후 라오스 러시아 베트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과 잇따라 국경 분쟁을 해소했다. 협상 과정에서 영토를 대폭 양보하는 경우도 잦았고 국경 지역의 군사력 감축에도 동의했다.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지위를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외교술도 더욱 세련돼 간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지도부는 이전 세대보다 해외 여행을 훨씬 자주하면서 중국 외교에 인간적 얼굴을 부여하고 있다. 국제 정치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정리한 '백서'를 10여 차례 발표하는 한편 정부 홈페이지에 관련 자료들을 공개하고 있으며 서구적 방식의 '미디어 브리핑'을 도입,주요 외교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외신 기자 회견을 갖고 있다. 국제적 지위에 대한 자기 인식도 2001년 9·11사태 이후 극적으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피해 의식'을 버리고 '강대국다운 사고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후진타오 총서기가 지난 여름 중국지도자로는 처음으로 G8회담에 참석한게 그 예다. 중국의 이익만을 생각했던 이전의 좁은 시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외교정책은 아시아 및 미국 지도자들에게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다. 중국의 국제기구 참여가 활발해짐에 따라 주요 국제 이슈에서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기가 쉬워진 것은 기회다. 실제로 중국과 미국은 테러 및 마약과의 싸움과 무기비확산에서 최근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입안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중국이 세련되고 영리해졌다고 해서 친절하고 부드러워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외교의 근본 목적은 자국 이해의 추구이기 때문이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 ◇이 글은 에반 메데이로스(미국 RAND연구소)와 테일러 프레블(하버드대학 온린 전략연구소)이 월스트리트저널 11월 26일자에 공동 기고한 '중국 외교의 변화(The Changing Face of Chinese Diplomacy)'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