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경쟁자없는 시장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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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에서 백전백승은 최선의 전략이 아니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의 전략으로 꼽았다.
기업세계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경쟁하지 않고 이겨야 진정한 경영이다.
독과점 규제에 매이지 않고 무경쟁의 사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경영이라 하겠다.
그런 사업이 가능할까 싶지만 '무경쟁의 시장 창조'를 목표로 그 방법론까지 체계화한 전략론이 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을 통해 국내 처음 소개된 김위찬 교수의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11월17일자 한경 A12면 참조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에서 전략과 국제경영을 가르치고 있는 김 교수는 동료 르네 마보안 교수와 함께 지난 90년대 중반 가치혁신이론을 주창했다.
두 사람은 지난 1백20년간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 전세계 1백50개 업체를 분석한 결과 성공한 기업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 하나를 찾아냈다.
이들 기업이 기존 시장에서 경쟁자들과 싸워 이긴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 시장을 만들어냄으로써 큰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쟁이 아니라 무경쟁의 신시장 창조를 강조한 가치혁신론은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의 경쟁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에만 몰두해온 유럽 기업들에 하나의 충격이었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회사나 신생업체들에는 전략만 제대로 세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주는 '복음'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가치혁신은 '무경쟁 시장을 창출하라'는 화두만 던지는 게 아니다.
아주 구체적인 방법론도 다루고 있다.
하나만 소개하면 대체산업을 분석해봄으로써 소비자들이 목말라하는 가치를 찾아내 전혀 다른 시장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초저가 항공사 사우스웨스트다.
지난 71년 출범한 사우스웨스트는 후발주자로서 기존의 항공사들과 경쟁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대체재에 주목했다.
미국의 경우 그것은 자가용차였다.
비싼 돈 내고,대도시 공항까지 가서 기다리다 다른 도시로 날아가 또 렌터카를 이용하는 식의 여행이 너무 버겁고 힘든 일반인들은 아예 차를 몰고 길을 나서고 있었다.
사우스웨스트가 주목한 계층은 비행기와 자가용 가운데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는 고객군이었다.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모델을 내놓을 수 있으면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조할 수 있었다.
사우스웨스트는 비행기의 장점인 속도와 친절한 서비스만 그대로 남기고 나머지는 자가용이나 택시 수준으로 서비스를 낮췄다.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고 비즈니스 라운지도 없앴다.
좌석선택권도 주지 않고 허브공항이 아니라 변두리 공항을 이용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항공요금을 택시 수준까지 낮출 수 있었다.
'초저가 국내선 항공사'라는 무경쟁 시장이 창출된 순간이었다.
출범 당시 3대로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2백60대의 비행기로 미국 52개 도시에 취항하면서 32년째 흑자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가치혁신론은 기업에만 국한되는 경영전략이 아니다.
작게는 개인,크게는 나라경영에도 그대로 원용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중국 대만 등과 벌여온 승산 없는 시장의 경쟁을 접고 가치혁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이들 나라가 생각도 못하는 새 시장을 창출하는 날을 그려본다.
안타깝게도 김 교수는 현재 싱가포르 정부의 국가경영을 자문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를 뺀 많은 나라들이 그의 자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는 소식이다.
전문위원 겸 한경STYLE 편집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