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4 10:22
수정2006.04.04 10:23
申受娟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 -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으로 오랫동안 올라 있던 우화로 지하동굴에 사는 두 명의 꼬마인간과 두 마리의 생쥐가 주인공이다.
식량인 치즈가 서서히 떨어져가는 상황에서 생쥐들은 과감히 새로운 치즈창고를 발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서는 반면,인간들은 변화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안주하다가 결국 창고가 텅 빈 후에야 새 창고를 찾아 허급지급 나선다는 내용이다.
기업인들에게 해외시장은 바로 우리의 치즈창고다.
오늘날 합종연횡식으로 펼쳐지고 있는 세계각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움직임은 말하자면 우리 창고의 치즈가 다른 창고로 옮겨지면서 비어가고 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열심히 치즈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GDP 대비 대외의존도가 70%에 달하는 우리가 이러한 움직임에 누구보다도 신속히 대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타결된 지 1년이 지나면서 이제 한·칠레 FTA는 국민들에게 익숙한 소재가 되었다.
비준을 둘러싼 공방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정부가 묵묵히 해외현장을 뛰는 우리 기업인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농업에 대한 피해문제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다.
제조업과 수출기업,더 크게는 우리 경제 전체의 장래를 감안한 균형잡힌 토론이 아쉽다.
논쟁을 보면 칠레를 잘못 골랐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우리 자동차업체가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칠레까지 진출하여 작년까지 그 시장의 1~2위를 다투었는데 FTA가 없어서 4~5위로 떨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칠레를 FTA 상대국으로 고른 결정은 평가받을 만하다.
칠레는 미국 EU 캐나다 멕시코를 비롯하여 세계의 30여개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인데 FTA 없이 우리 자동차업체들이 어떻게 그 시장을 지켜낼 수 있을까. 오히려 첫 상대국으로 머나먼 중남미의 칠레를 택한 것은 한반도와 동아시아,그리고 북미와 유럽에 국한되어 있던 우리 민족의 경제적 활동공간을 한껏 넓힌 것으로 평가할 일이다.
사업하는 사람의 경험에서 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비용 없이 수익만 보장해 주는 거래가 어디 있을까. 문제는 그 사회가 비용을 감내하고도 거래를 성사시킬 의지가 있느냐다.
피해에 대해서는 보완대책을 세워가면 될 일이다.
필자는 한·칠레 FTA 협상 결과 앞으로 10년간 6백억원 정도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어느 대학의 피해추정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지 못한다.
또한 현시점에서 향후 10년간 농어촌에 1백19조원을 투입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표도 있었지만 어느 분야에 얼마만큼의 돈이 쓰여지는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장기적으로 그 막대한 재정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데,역시 그 돈은 수출시장에서 벌어와야 할 것이다.
우리 기업인들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보조금도 수출역군이라는 찬사도 바라지 않는다.
단지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출환경을 조성해 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경쟁국들이 자국 기업인들을 위해서 다른 나라들과 열심히 FTA를 체결해 가고 있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우리도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FTA야말로 국가기반이 제공할 수 있고,또 제공하기 위해 앞장서야 하는 무형의 사회간접자본이라 할 것이다.
한·칠레 FTA는 정치적 이익이라는 잣대로 평가할 사안이 켤코 아니다.
국회에서 더 큰 국가이익을 위해 대승적으로 판단해 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모든 일정이 내년초에 발효될 수 있도록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떠나고 있는 산티아고의 자동차딜러들에게 내년 4월 한국의 총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DDA 협상이 끝난 뒤에 다시 보자고 할 수 있을까.
치즈는 줄어들고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치즈를 다 잃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우를 범하는 것은 기업인,농업인 그 누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kostarss@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