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황산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영화 '황산벌'이 개봉 보름만에 2백3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매트릭스2'의 총관객이 3백60만명,'터미네이터3'가 2백50만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퓨전사극 코미디사극 등으로 불리는 '황산벌'의 내용은 간단하다.
서기 660년 백제의 계백은 무너지는 나라를 구해 보려 황산벌에서 5천 군사로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신라군을 맞아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다.
결론이 뻔한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은 '거시기'를 키워드로 한 영호남 사투리 차이에 따른 에피소드와 일반인의 카타르시스를 해소하는 질펀한 욕설,'악의 축' 운운하는 현대판 용어와 '강대국의 힘에 의존한 자의 한계'라는 메시지를 적절히 꿴 구성 등이다.
개봉 이후 '거시기 신드롬'이 생겼다고 하듯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거시기'다.
한쪽에선 수많은 뜻으로 통용되는 말을 다른 쪽에선 전혀 알지 못해 발생하는 일을 통해 의사소통 및 정보의 중요성을 다룬다.
'거시기'의 뜻을 몰라 공격을 미루던 김유신이 "머시기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한다"가 '죽을 때까지 갑옷을 안벗는다'이고 그때문에 갑옷을 꿰맸다는 걸 안 뒤 비오기를 기다려 진흙포탄을 날리는 게 그것이다.
흥행과는 별도로 평가는 엇갈린다.
'퓨전사극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했다' '반전 및 외세 개입으로 이뤄진 불완전한 삼국통일에 대한 비판은 의미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한국사의 가장 비장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우스개로 만든 반역사적 행태"라는 얘기도 있다.
어쨌거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몫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고민을 보여주고,온갖 욕설 또한 자연스레 소화된다는 점에서 근래의 조폭코미디와 구분된다.
그러나 사투리와 '거시기'의 맛을 해외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는 의문이다.
거시기는 'it',머시기는 'that'으로 번역했다지만 it과 that으로 어떻게 거시기와 머시기의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으랴."그냥 거시기로 알아두쇼"와 "Just call me,'no-name'"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이런저런 비판에도 충분히 재미있는 이 영화가 외국인들의 웃음도 자아낼지 알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