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계의 총본산인 게이단렌의 오쿠다 히로시 회장.재계의 국무총리로 불리는 그가 지난 달 30일 일본 정부와 여당에 대해 또 한번 볼멘 소리를 했다. 이유는 연금 개혁에 따른 정년연장 문제였다. 그는 연금 재정에 구멍이 생길 것을 겁낸 정부가 지급시기를 늦추면서 근로자들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편법을 동원하려 한다고 펀치를 날렸다. 기업들이 감원 문제로 고심하는 판에 정년연장은 인구 고령화의 대가를 기업에 떠넘기는 처사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오쿠다 회장의 발언에는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이 듣기 거북한 것이 심심찮게 담겨 있다. "일본,이대로는 안된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물론 각료 인사 촌평도 스트레이트로 쏟아내기 때문이다. 기업헌금이 정경유착으로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공개적 정치헌금이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다며 생산적이고 올바른 정치 풍토를 심기 위한 돈을 재계가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정책과 이념을 평가해 돈을 주되,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겠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정치권 시각에서 본다면 "정치가 무슨 사고파는 물건이냐"고 발끈할 수도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가 설화로 곤욕을 치렀다는 보도나 돈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비판은 들리지 않는다. 정부 여당의 무능과 위기 불감증을 탓할 때는 언론에서도 당연히 할 말을 했다는 논조가 주류를 이룬다. '돈 주고 구속되고…' 비자금 파문으로 한국 재계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왔다는 탄식에는 한·일 재계의 1백80도 다른 처지가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강조하는 한국 정부는 입만 열면 일본의 투자 확대를 호소한다. 그러나 요동치는 정치판은 한국을 '기업인이 본업 외에 신경 쓸 곳이 아직 너무 많은 나라'로 비쳐지게 만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