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를 한 달여 앞둔 치매 할머니가 자식들의 불행을 염려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9일 오후 5시40분께 광주 북구 문흥동 모 아파트 9층 계단에서 최모(70) 할머니가 창 밖으로 몸을 던져 숨졌다. 유족들에 따르면 최 할머니는 4남3녀의 어머니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으나 부동산 사업으로 돈을 잘 벌던 셋째 아들 오모(37)씨가 지난 99년 부도를 맞으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함께 살며 누구보다 자신을 극진히 돌봐주던 셋째의 실패를 애통해 하고 있을 무렵 육군 하사관으로 근무하던 늠름한 넷째 아들(35)마저 관절염으로 의가사 제대를 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서울 셋째네에서 광주 큰 아들(46)네로 옮긴 할머니는 이때부터 적령기를 넘기고도 결혼을 하지 못한 두 아들 걱정 뿐이었다. 연락조차 되지 않는 넷째는 '입산했다'는 소문만 들렸고 이에 시름하던 할머니는 지난해 9월 치매까지 맞게 된다. 금방 둔 물건도 어디 있는지 기억할 수 없어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할머니는 자신을 수발하느라 애쓰는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까지 버거워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큰 아들 오모씨는 "어머니가 기억력을 잃어 고생을 많이 했고 정신이 온전할 때도 아내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면 빨리 죽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결국 자식 걱정과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을 견디다 못한 할머니는 바쁘게 학원으로 향하던 초등학생 손녀에게 '나 죽는다'는 말을 남기고 삶을 마감했다.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sangwon7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