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관리공사(KAMCO)가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해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은 공기관으로서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함과 동시에 부실채권시장에서 주도권을 획득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원리금 70% 감면과 협약체결 즉시 신용불량 기록 해제라는 혜택은 일부 악성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조장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왜 감면해 주나 현재 KAMCO가 보유하고 있는 부실채권은 9월말 현재 6조6천억원어치이며 채무자만 1백만명(중복 포함)에 이른다. 정부가 신용불량자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신용불량자의 30% 정도를 관리해야 하는 KAMCO도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여기에 최근 국민은행이 원리금 최대 50% 감면, 상환기간 8년이라는 독자적인 신용불량자 신용회복 지원프로그램을 들고 나온 것도 KAMCO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KAMCO가 카드사 등으로부터 부실채권을 사들인 가격이 장부가 기준으로 평균 15% 미만이란 점도 선뜻 채무재조정에 나설 수 있는 요인이 됐다. KAMCO로선 30%만 건져도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대상 채권 대부분이 KAMCO측에 50% 이상의 의결권이 주어져 있는 것이어서 KAMCO의 독자적인 원리금 탕감 결정만으로도 전체 채권자를 구속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KAMCO는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해 서울본사와 지사 등에서 약 3백명의 직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 모럴해저드냐 경제회복이냐 금융권 일각에서는 아무리 무담보채권이라도 원리금 70%를 감면해 주면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재산을 처분한 후 채무상환을 거부하다 KAMCO로 채권이 넘어가면 30%만 상환하면 된다고 볼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KAMCO측은 "재산보유와 지급능력을 정확히 파악해 원리금 감면폭을 결정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반박했다. KAMCO는 특히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신용불량자 문제가 향후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과감히 채무재조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 신용불량기록을 즉시 삭제해 줌으로써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면 국가경제 전체적으로는 실보다 득이 많다는 해석이다. ◆ 은행권은 어떻게 하고 있나 은행권의 신용불량자 구제프로그램은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신용불량자 대부분은 여러 금융회사에 빚을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인 만큼 금융권을 대표해 신용불량자와 상담하고, 대책을 세워주며, 여러 금융회사들로부터 동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는 이제까지 신용불량자 3만5천여명으로부터 워크아웃 신청을 받았다. 전체 신용불량자 3백41만명중 1% 정도만이 상담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나마도 채권금융회사들이 원리금 감면 등 워크아웃 계획에 동의해 준 경우는 1만명 남짓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부채 탕감 폭도 매우 제한적이다. 규정상으론 원리금의 33%까지 탕감받을 수 있게 돼 있지만 그 정도를 감면받은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원리금을 8년간 분할상환하고 △이자율을 7∼8%로 하향조정하며 △그동안의 연체이자를 탕감하는 정도의 혜택만 받고 있다. 원금을 탕감받는 경우는 전체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민 조흥 등 일부은행은 단순채무자에 한해 원리금을 최대 50%까지 감면해 주고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신청자 접수를 받은 국민은행의 경우 신청자가 3백명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잘 말해주듯 현실성이나 은행측 의지가 높지 않다는 평이다. 김용준ㆍ김인식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