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자신의 재신임 발언 배경을 설명하고 국회의 협조를 요청하는데 오랜시간을 할애했다. 당초 대통령의 시정연설 목적은 내년도 예산안을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었지만, 이 날은 '뒷전'으로 밀렸다. 노 대통령은 시정연설 전 국회의장실에서 각당 지도부와 면담하는 자리에서부터 재신임 문제를 화두로 꺼냈으며, 연설이 끝날 때까지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10시4분 개의된 본회의에는 대다수 의원들이 참석, 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노 대통령이 입장할 때 한나라당 일부 의원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의원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통합신당 의원들만 일제히 박수를 보냈고, 상당수 민주당·한나라당 의원들은 박수는 치지 않았다. 입구에 앉아 있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장하는 노 대통령과 웃으면서 악수,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30여분 가량 진행됐으며 연설 도중 단 한 차례의 박수도 나오지 않았다. 특히 노 대통령이 연설 말미에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해 '포용'을 강조할 땐 한나라당 의석에서 다소 술렁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노 대통령이 이날 10시37분 시정연설을 끝내고 본회의장을 빠져 나갈 때 통합신당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으나 대부분 한나라당 의원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월 국회 국정연설에 이어 이날 시정연설에서도 송 교수 관련 부분이나 재신임 문제에 대해 상당시간 원고에 없는 발언을 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실에서 박관용 국회의장과 민주당 박상천 대표, 통합신당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 자민련 김종필 총재 등과 함께 10여분간 환담을 나눴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상임운영위 회의 주재 등을 이유로 홍사덕 총무를 대신 참석시켰다. 이날 환담에선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를 둘러싸고 노 대통령과 박상천 대표가 법리논쟁을 벌였다. 박 의장이 "많은 사람들이 재신임 투표에 대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관심을 갖고 있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노 대통령은 "(투표가) 되는 방향으로 합의해 주길 바란다. 법 적용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재신임 국민투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자 박 대표는 "헌법 72조에 외치와 안보상황에 대해서만 국민투표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국가안위를 광범위하게 해석해 달라"고 주문했고, 박 대표는 "안위가 정책은 아니지 않느냐"며 "이 문제는 국회에서 공론화해 봐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결의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박 대표는 "아니다. 국회에서 공론화를 통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다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재신임과 중간투표를 거론한 적이 있다"며 "아무 근거 없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정치적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