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노조단체가 사업주들과의 투쟁에서 백기를 든 이변이 발생했다. BCT(벌크시멘트트레일러)부문 임금협상 부진을 빌미로 파업에 들어갔던 화물연대가 16일만에 항복을 선언한 것.이와 관련,언론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백기사'들이 등장,사건해결에 실마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시멘트 출신이 운영하는 운송회사 소속 직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들은 물리적 위협도 서슴지 않은 화물연대측의 운송중단 요구에도 아랑곳 않고 벌크시멘트를 묵묵히 실어 날랐다. 이들의 용기와 정부 및 사업주들의 강경일변도적 자세에 자극받은 BCT기사들이 속속 현업에 복귀,투쟁의 대오가 흐트러지면서 화물연대측은 파업종료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은 종업원과 그 가족의 생계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한일시멘트 창업주 고(故) 허채경 회장의 인간존중 경영이념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한일시멘트는 10여년 전부터 '소사장제'라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 퇴직한 임직원들이 생계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퇴직보험인 셈이다. 이들 소사장은 대부분 한일시멘트가 생산하는 시멘트나 레미콘을 실어나르는 운송회사를 차려 놓고 있다. "퇴직 이후가 보장돼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회사에 대한 신뢰가 절로 생겨나지 않겠어요?" 이 회사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김수강 과장의 말이다. 한일시멘트는 대부분 사업장에서 춘투(春鬪)니 하투(夏鬪)니 하며 연례행사화돼버린 노사분규 홍역을 단 한차례도 겪은 적이 없다. 물론 주가와 기업가치가 업계 1위자리를 수년째 고수하고 있는 만큼 "으레 그러려니"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버는 회사라고 해서 반드시 노사간 화합의 문화가 절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즐겁고 보람찬 일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일시멘트의 복지제도는 직원들로부터 확실한 신뢰를 얻고 있다. 정환진 사장부터가 감동경영을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직원들의 생일날 배우자에게 '고맙다'는 내용의 감사편지와 상품권 등 선물을 보낸다. 미혼인 직원의 경우 부모님들이 사례의 대상이다. 매주 수요일은 '가정의 날'로,이유를 불문하고 정규업무시간이 끝나면 전 사원이 퇴근한다. 잔업이나 야근이 없는 날로 지정,가족들이 주중에도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것. 생산직 근로자가 많은 업종 특성상 체력단련 프로그램이 잘 구비되어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이 회사 자랑거리다. 일례로 단양공장의 경우 수영장이나 테니스장 헬스장을 전면 무료개방하고 있으며,대도시에서 근무하는 직원 중 희망사원에게는 휘트니스센터 정기회원권을 제공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