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정책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에서 벗어나 '경쟁촉진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규제학회와 공동으로 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공정거래정책, 패러다임을 바꾸자' 정책세미나에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방안' 주제발표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 토론내용 ] 주제발표자로 나선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공정거래법이 지향하는 목표를 경쟁촉진으로 일원화하고 △기업지배구조 및 경제력집중 억제와 관련된 조항을 삭제하며 △산업정책과 관련된 내용을 삭제하고 △경쟁정책을 강화하고 과학화하기 위해 기업분할 청구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선 규제학회장(서울대 교수)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 20여년간 공정거래제도가 '시장경쟁을 보호'하기보다는 경제사회적 약자집단을 '시장경쟁에서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처럼 곡해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기업이 국내외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과 경쟁하는 글로벌화된 경제여건 속에서 공정거래정책도 이제는 낡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승희 한경연 원장은 기조연설에서 "1980년대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을 정체시킨 여러가지 원인 가운데 특히 30대 그룹에 대한 획일적 특별규제를 도입한 공정거래법의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이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며 "공정거래법이 경제력집중 규제에서 경쟁정책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 토론 내용 한경연과 규제학회의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방안을 두고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이인권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공정위는 산업정책적인 기업결합심사와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미흡한 규제를 통해 할 일은 제대로 못한 반면 추상적인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을 통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너무 많이 해왔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의 목표가 소유분산 및 업종전문화라고 했다가 최근엔 대리인 비용축소라고 주장한 것은 본질적으로 구체적이고 일관된 정책목표가 정해져 있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우 동의대 교수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실질지분율이나 의결권 승수 개념 등을 도입해 업별로 차별적 규제를 하자는 대안도 출자를 규제한다는 의미에서 그 부작용은 피해갈 수 없다"며 "기업분할 청구권제도의 도입은 경쟁보호를 위해 매우 진일보한 조치이지만 시행요건이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공정거래법의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에 반대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연태훈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은 기업집단의 지배대주주가 보유한 소유권과 지배권 사이의 심각한 괴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한 부의 이전을 억제하는 것"이라며 "기업의 내ㆍ외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된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는 적어도 한시적 행정규제로서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또 최정표 건국대 교수는 "재벌에 대한 규제는 필요악이며 이는 경쟁촉진을 주목표로 하는 공정거래정책과 함께 시행돼야 한다"며 "그룹이 아닌 개별기업에게 경영독립성이 보장되는 지배구조가 확립될 때까지는 재벌규제가 불가피하고 오히려 더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 주제발표 ]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자본 및 금융시장과 상품시장은 서로 상이한 법 제도, 정책수단 및 규제기관에 의해 규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상품시장의 규율방식을 규정하는 현행 공정거래법은 외국과는 달리 지분제한 채무보증제한 출자제한 의결권제한 등과 같은 금융 및 자본시장의 규율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대기업 상호간 경쟁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성봉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이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란 공정거래법의 이름을 '경쟁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법의 목적도 '경제력집중 억제와 경쟁촉진을 통한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이라는 다소 이중적인 데서 탈피, '경쟁촉진을 통한 국민경제의 향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지배구조 및 경제력집중 억제와 관련된 조항인 지주회사 규제, 상호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 계열사 채무보증 제한, 금융ㆍ보험사 의결권 제한을 폐지하고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독점의 폐해가 큰 회사를 분할할 수 있는 기업분할 청구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공정거래위원장 및 부위원장 선임 방식을 변경하고 공정위 구성을 방송위원회식으로 바꿔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며 모든 공정위원을 상임위원화함으로써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