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독일 유학 중 송두율(59.뮌스터대)교수 등과 함께 반정부활동을 하다 입북한 뒤 92년 자수한 오길남(61)씨는 2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송교수에 대해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여전히 그를 존경하기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며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송교수가 지난 85년 오씨의 입북을 권유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에서 송교수와 대질조사를 받기도 했던 오씨는 "송교수가 당장 한국에서 활동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죽지 말고 언젠가 한국에서 학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오씨는 자신의 입북당시 송교수의 역할에 대해 "독일에 머물고 있던85년 8월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던 터에 송교수가 `우리가 등을 기댈 데가없지 않나'는 말을 했다"며 "그는 평소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방향을제시하면서 조용하게 권유하는 스타일인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 입북했다. 섭섭한마음이 없지 않지만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오씨와의 일문일답. --송교수를 국정원에서 만난 소감은. ▲송교수는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의 하나다. 그를 만나서 "내가 죽은 뒤에돌아왔다면 이런 괴로운 일도 없었을텐데"라고 말했다. 그가 조사과정에서 시인과부인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는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가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당분간 한국에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일정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국내에서 학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인으로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 그의 학자로서의 카리스마에 나는 굴복한 사람이다. 언변이 조용하면서 논리정연하고 현란하다. 그리고 외국어에도 능통하다. --지난 85년 입북할 당시 송교수의 역할은 ▲85년 8월께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던 터에 독일 북부 휴양도시에서송교수를 만났다. 송교수는 평소 조용하면서도 현란한 언변으로 이야기하는데 방향을 제시하고 조용히 권유하는 스타일로 좀처럼 직접화법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등을 기댈 데가 없다"는 말을 했는데 내가 덜컥 그말을 받아들였다. 송교수에게 섭섭하지만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송교수의 이번 입국 배경을 어떻게 보나 ▲아마 송교수는 국내에서 합법적 공간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했던 것같다. 하지만 고위급 공작원으로 활동한 부분 등이 조사에서 드러나면서 상황이 어렵게 된듯 하다. 그가 '경계인'으로 불리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북측과의 관계를 매듭짓고 선처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