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으로 대형 태풍이 연중행사로 한반도에 상륙하고 파괴력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도 부산항을 비롯한 전국 주요 항만의 컨테이너 크레인 등 핵심시설들이 여전히 과거 기준으로 건설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의 경우 이번 태풍 '매미'에 의해 크레인 11기가 파손되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는데 현재 제작 중인 크레인들도 '매미'급 태풍에는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수출항만의 경우 일본 대만 홍콩 등 경쟁국들은 한국보다 훨씬 강화된 기준에 따라 각종 시설물을 건설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는 과거 재해 노출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약하게 건설하고 있어 제도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국가 인프라뿐만 아니라 레저형 아파트 콘도 호텔 펜션 등도 대형 태풍 등의 내습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채 짓고 있어 대형참사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부산항부두에서 크레인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은 태풍 '매미'로 부서진 크레인을 긴급 대체하기 위해 제작업체들에 기성제품을 주문했지만 하나같이 태풍 '매미'급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밝혀져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 공단은 특히 현재 운영 중인 크레인을 일본 항만수준인 초속 75m 강풍을 이겨낼 수 있는 것으로 개조할 것을 검토했지만 부산항의 연약기반이 버틸 수 없는 것으로 밝혀져 포기했다. 광양과 울산항 등 부산의 대체항만도 사정은 마찬가지인 것으로 확인됐다. 크레인 제작사 관계자는 "크레인의 태풍 내구성을 일본 수준으로 높이려면 크레인 중량이 50t 정도 늘어나는데 초속 50m 태풍까지만 고려했기 때문에 크레인 강화공사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을 동북아 물류중심지로 키우기 위한 야심작으로 건설 중인 신항만도 '기상이변시대'를 내다보지 않고 과거 기준으로 지반 및 크레인 공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항만을 건설 중인 부산신항만 관계자는 "50m 강풍까지만 버틸 수 있는 크레인 등을 계획했기 때문에 일본 수준으로 강화하려면 공사를 거의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판국"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 경우 수천억원이 더 들고 완공기간도 늦어져 부산항 경쟁력 '업그레이드'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국의 해안에 들어서고 있는 레저형 고층아파트나 콘도 펜션 등도 자연재해에 극히 취약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산에 태풍 '매미'가 닥친 지난 12일 밤 10m 높이의 파도가 해안을 덮치면서 해변 건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부산 한화리조트는 1층에 있는 두께 1.5㎝의 강화유리가 모두 부서지면서 지하 6층과 5층이 완전 물에 잠기고 나머지 지하층도 부분적으로 침수되면서 차량 2백여대가 피해를 입었다. 백사장에서 50m가량 떨어진 부산메리어트호텔도 지하층 일부가 침수되거나 창고와 기계장비 등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한국콘도 등 해운대와 광안리,송정 해안에 인접한 고층 건물들의 피해도 잇따랐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화리조트 주변 수영만매립지와 수영구 민락동매립지에는 32∼47층짜리 고층 오피스텔과 아파트 건립이 태풍과 해일 등에 대비한 안전대책 없이 추진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갈수록 기상이변이 격심해지기 때문에 태풍 '매미' 규모의 자연재해는 앞으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주5일 근무시대를 맞아 해안 강 주변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레저형 아파트,콘도,펜션 등에 대해 태풍과 해일 등에 대비한 시설기준을 엄격히 하는 방재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