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마다 식당이 들어차고/ 물가마다 레스토랑이 즐비하다./이 나라 산천 가는 데마다/식당이요 카페요 레스토랑 뿐이다./굶은 죽은 귀신들이 환생을 해서 저렇게 됐을 것이다./또 다른 아귀들은 몰려들어 아귀아귀 먹는다./한 아귀인 나는 토종닭을 시켜 먹으며 이 천박한 나라를 개탄하고 개탄한다./이 나라 이 국민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이 땅의 계곡들아 대답해다오./바다야 강물들아 대답해다오./아귀들 대답해다오. (정현종, '아귀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경제는 사유재산제도와 경제활동의 자유를 두 기둥으로 삼아 각자가 자기 책임하에 자기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맹렬하게 각자 이익을 챙기는 시장경제에서 제일 그악스런 사람들이 자본가 계급이다. 이 자본아귀들이 맘껏 이윤을 추구하게 하여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생산성의 향상과 물질면의 풍요를 이루었다. 자본아귀가 피도 눈물도 없이 노동을 착취하여 단꿀을 빠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이런 뜨거운 가슴으로 노동자를 주인으로 내세우면서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나온 것이 사회주의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아귀가 설치는 자본주의 대신 노동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가 평등하게 대접받고 기를 펴며 사는 세상은 분명 좋은 세상이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가 흥하고 자본주의가 망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자본주의가 흥하고 사회주의는 망해 버렸다. 사회주의가 열심히 노력할 유인을 앗아가고 자본아귀 대신 일당독재와 관료아귀가 설쳐댔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종언을 고하기 시작한 1980년대 말에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개발독재와 레드 콤플렉스가 노동운동을 반체제활동으로 탄압했던 데 대한 반작용도 가세해 전투적 노조가 등장했다.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김대중정부는 위기극복과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로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다. 당시는 비상한 시기였던 만큼 정부가 비상경제명령을 내려 국제통화기금이 훈수하는 총체적인 개혁을 추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대신 노동계와 억지춘향식으로 합의형식을 빌려 노동유연성개혁을 추진했다. 이때문에 노동계는 제 살을 도려내는 일에 합의해 준 대가를 받아내야겠다고 사사건건 나서기 시작했다.더구나 조직률이 10%대에 불과한 노조를 사회의 3각기둥의 하나로 격상시켜 줌으로써 전투적 노조를 자본아귀,관료아귀에 버금가는 노조아귀로 키워 주었다. 참여정부는 설상가상의 잘못을 저질렀다.출범 전부터 자본과 노동간 사회적 힘의 균형을 맞춰주겠다고 나선것이다. 그 결과 더욱 기세등등해진 노조아귀는 생산성을 아랑곳 않는 임금인상,불법파업,무노동 유임금에다 경영참여,기업의 노조기금 출연 등 국제기준과 동떨어진 것들을 가열차게 요구하는 점입가경의 상황이 연출됐다. 자본아귀가 아우성을 치고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문제는 자기 노동이 착취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취업을 바라는 청년실업자들과 샌드백 신세의 부품기업 노동자들에게도 조립대기업의 노조는 정녕 아귀라는 사실이다. 시장경제는 생산의 영역에 관한 한 자본아귀가 제일 힘이 센 치사한 체제이다. 이 꼴을 못보겠다고 관료아귀나 노조아귀가 자본아귀를 핍박하면 자본아귀가 나라 밖으로 빠져 나가고 경제활력이 떨어진다. 결과는 국력 저하와 실업 증가로 나타난다. 생산영역에서는 자본·노조아귀의 역할을 국제기준에 맞게 정해 주고 이를 준수케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세계를 자본아귀와 노동자의 영원한 투쟁의 장으로 보는 운동권아귀 식의 시각을 고쳐야 한다. 노동자도 지식과 인적자본을 쌓아 벤처기업과 자영업을 영위하는 자본아귀로 변신하는 길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노조아귀를 아귀아귀 먹는 필자는 일찍이 20대에는 사회주의에 경도됐지만 지금은 자본주의의 주구(?)가 된 먹물아귀이다. 이제는 온전한 젊은이들이 사회주의로 내몰리지 않을 만큼 세상이 바뀌어져서 좋다. 북한도 어서 빨리 이렇게 바뀌어진다면 더할 수 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