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시절. 한 선배가 다짜고짜 '기자'를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대답을 머뭇거리자 그는 힘주어 이같이 말했다. "기자는 하루하루 역사를 쓰는 '기사자(記史者)'이자 '당대 사가(史家)'이다. 절대 권력자인 왕도 함부로 못했던 조선시대 '삼사'(三司, 사헌부ㆍ사간원ㆍ홍문관)처럼." 이 말은 기자 초년병 때부터 줄곧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 역할과 균형잡힌 시각으로 고민하게끔 만들었다. 또한 남들 다 쉬는 휴일ㆍ명절에도 기꺼이 일할 수 있는 힘이 됐다. 그러나 요즘은 기자로서 자부심이 자괴심으로 변질되는 것 같아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대통령은 '소주파티나 즐기는' 사람들로 치부하며 소송을 불사했고, 정부의 '홍보실 차장'이란 인물은 '정기적으로 돈 봉투를 줬다'는 외지 기고문으로 기자들을 욕보였다. 한술 더 떠 정부는 인터넷 언론매체를 갖겠다고 나선 판이다. 국민들에게 '보는 시각'까지 제시하겠다는 의욕과잉에서 옛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진실'이라는 뜻)가 연상됨은 무슨 연유일까. 동서고금의 어떤 정권이건 역사를 만들 수는 있었어도 스스로 역사를 기록해 성공한 예를 보지 못했다. 올해도 벌써 3분의 2가 흘렀다. 이달부터 각 부처 기자실 개조공사에 들어가 다음달이면 통합 브리핑룸이 본격 가동된다. 혹여 브리핑제를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리는 것'으로 여기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번 주에는 그냥 흘려넘길 수 없는 토론이 참 많다. 대통령·국회의장·3당 대표가 북핵 노사 경제살리기 등 초당적 현안을 놓고 '국정 5자회담'(4일)을 갖는다. 하투(夏鬪)가 마무리되면서 정부의 선진 노사관계 밑그림이 노사정위원회(4일)에 제시된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5일)도 열린다. 주말(6일)엔 노무현 대통령이 KBS 심야토론에 나와 국정전반에 대해 국민과의 대화를 마련한다. 지금 국민들은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남북문제 못지않은 남남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홈쇼핑 이민상품에 1백75억원의 대박이 터진데 대해 씁쓸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무수한 토론들이 무엇보다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쪽으로 모아지길 기대해 본다. 주말에 새삼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꺼내 읽어봤다. 기자가 하루하루 역사를 기록한다면 스스로 왜곡 과장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아울러 정권의 '애완견'이 아닌 '감시견' 역할을 다할 것임을 다시금 다짐한다. <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