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팽이 남자는 무데뽀 아줌마도 질리게 하는 이 땅의 '신인류'다. 경제적인 쪼들림과 억압적인 사회풍토에서 탄생한 좀팽이 남자들은 타인과 관계맺기를 최소화한 채 '자린고비'로 살아간다. 로맨틱 코미디 '불어라 봄바람'(제작 시네마서비스·감독 장항준)은 이런 좀팽이 남자를 길들이는 '푼수' 처녀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상반되는 두 캐릭터의 충돌과 예쁜 여성의 입에서 나오는 막말이 웃음을 낳는다. 주인공 선국(김승우)은 위선적인 좀팽이 작가다. 기름값이 아까워 세입자에게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속이거나 남의 이야기를 자기 것인양 베끼고 행동과 반대로 언변만 그럴 듯하다. 그의 집에 세든 다방 종업원 화정(김정은)은 무식하지만 솔직하다. 김승우는 전작 '라이터를 켜라'에서 보여준 다소 '어리숙한' 이미지에다 '자린고비'의 면모를 섞어 좀팽이 선국을 만들어낸다. 김정은은 '가문의 영광'에서 보여줬던 순종적인 여성미를 심화시켜 '푼수'에 가까운 배역을 연기한다. 대조적인 두 사람이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대로 가까워지면서 사랑에는 문턱과 경계가 없음을 보여 준다. 노작가(변희봉) 심작가(장현성) 희구(김경범) 등 주변 인물들이 배경음악 '크레이지 러브'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대에게 '필이 꽂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국과 화정의 유일한 공통점은 동네 달리기다. 화정은 차배달하러 달리고 선국은 시끄러운 종소리로 자신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성당 앞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자신의 거짓말을 친구가 발설할까 입막음하기 위해 뛴다. 영화는 '지식=교양'이라는 선국의 착각과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비판한다. 작가의 자산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임도 역설한다. 책상물림의 소설가 선국은 창작의 재료 부족으로 고민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겪는 화정은 삶 자체에 창작의 원천을 보유하고 있다. 화정의 입담을 선국이 다듬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장면에는 사랑과 화합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가치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9월5일 개봉,15세 이상.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