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엔 책값도 만만찮다. 이럴 땐 얇고 가벼우며 값도 싼 문고판을 사보면 어떨까. 출판사들도 지난 80년대 초중반 이후 독자가 급감했던 문고판을 최근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문고판 부활의 선두 주자는 '책세상 문고'.'우리시대''고전의 세계''세계문학''위대한 작가들''카뮈전집''니체전집' 등 다양한 문고판 시리즈를 내고 있다. 지난 2000년 5월 '한국의 정체성'(탁석산 지음)을 제1권으로 낸 '우리시대'시리즈는 최근 '노동소설,혁명의 요람인가 예술의 무덤인가'(유기환 지음)까지 73권이 출간됐다. 고전에 국한된 옛 문고판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젊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인문·사회 영역의 여러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책의 필진이 전부 국내 저자라는 점도 신선하다. 또 '고전의 세계'는 지난해 1월 '민족이란 무엇인가'(에르네스트 르낭 지음) 출간 이후 최근의 '논어'(공자의 문도들 엮음)까지 29권이 나왔고,'세계문학'(12권)'위대한 작가들'(16권) 등의 시리즈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지난 95년부터 1백10여권이 나온 시공사의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도 문고판 부흥을 주도해 왔다.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발견총서'를 번역한 이 시리즈는 책의 3분의 2 이상이 컬러 사진으로 이뤄져 '읽는 책'에서 '보는 책'으로의 전환을 가져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문학과지성사가 지난 96년 말부터 내놓고 있는 문지스펙트럼 시리즈도 주목할만하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한국문학·외국문학·세계의 산문문화마당·우리시대의 지성·지식의 초점·세계의 고전사상 등 7개 영역으로 폭넓게 조감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70여 권이 나왔다. 인문학의 위기를 문고판으로 타개한다는 취지 아래 지난 6월부터 나오고 있는 살림출판사의 '살림지식총서'는 1백쪽 이내의 분량이어서 더욱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2개월 남짓한 동안 19권을 낸 데 이어 올해 안에 70여권을 발간할 예정.또 지난 95년부터 일본 관련 연구서를 문고판으로 내놓고 있는 소화의 '한림신서 일본학 총서'도 70여권에 이르고 열화당의 '열화당 사진문고'(10권)와 '열화당 미술문고'도 고정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출간되고 있는 이제이북스의 '아이콘시리즈'는 비트겐슈타인 니체 촘스키 데리다 라캉 다윈 등 철학·과학자들의 사상을 1백쪽 안팎에 담은 문고판.영국 아이콘북스 출판사의 인문서 시리즈를 번역했다. 공포증,나르시시즘,에로스 등 흥미로운 심리학적 개념들을 파고든 '사이코 시리즈'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19권이 출간된 김영사의 '하룻밤의 지식여행'시리즈는 70년대 후반부터 60종 이상 출간된 영국 아이콘 북스의 '입문하기'(Introducing) 시리즈를 번역한 것.심리학 철학 촘스키 수학 플라톤 등의 만만찮은 주제들을 사진과 삽화 만화 등을 곁들여 쉽게 알려준다. 또 프랑스 플라마리옹에서 발행한 'ABC daire'를 번역한 도서출판 창해의 'ABC북'(50권)은 백과사전의 각 항목을 문고판에 담았다. 한국의 민속,고미술,불교문화,음식문화,생활문화 등 분야별로 원색 사진을 곁들인 입문서인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도 89년 이후 지금까지 2백50여권이나 나왔다. 이밖에 '동문선 현대신서',니체 로크 스피노자 칸트 등 서양철학자의 사상을 정리하는 '궁리필로소피', 추리소설 1천권을 선정해 이중 1백7권까지 선보인 동서문화사의 '동서미스터리북스' 등도 문고판 시장을 받쳐주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