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내년 2월 만료 예정인 금융거래정보 요구권(계좌추적권)을 오는 2009년까지 5년간 연장키로 하고 20일 입법예고한 것은 행정편의주의와 조직이기주의의 발로다. 계좌추적권은 예정대로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연장은 우선 입법취지에 맞지 않는다. 국회가 이 권한을 '한시적'으로 인정했던 것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공정위가 가질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3년간 부여받은 것을 2년 연장한 후 다시 5년이나 더 연장하겠다는 것은 '조직이기주의'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번에 5년이 연장될 경우 그때 가서 다시 "부당내부거래 상황을 평가해 재연장도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상설화 의욕까지 내비친 점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면 금감위에 조사를 의뢰하면 되고 또 혐의가 분명할 경우는 검찰에 고발하면 될 것이다. 더구나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각종 규제가 거미줄처럼 만들어져 있고 집단소송제까지 도입돼 투명경영을 위한 여건은 이미 상당히 성숙된 상태다. 그러잖아도 행정기관에 의한 계좌추적 사례가 지난해 25만건을 웃도는 등 지나치게 남발되면서 전면적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금융실명제 도입 당시 검찰과 과세당국에만 허용됐던 것을 감사원 금감위 선관위 등으로 슬금슬금 확대한 결과다. 이런 마당에 공정위가 굳이 이를 계속 보유해야 할 이유가 없다. 검찰과 과세당국을 제외한 감사원 등 다른 기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계좌추적권을 남발하는 것은 비밀보장을 전제로 도입된 금융실명제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마저 침해하는 것이다. 예금주 정보가 보호되지 못할 경우는 금융거래가 크게 위축되는 등 부작용도 대단히 심각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행정편의주의를 벗어나 금융실명제 기본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