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 흐릿한 잿빛 세상의 온천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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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온통 잿빛이다.
후끈한 열기와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
좁다란 길 양쪽에선 연기와 수증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목조 다리를 건너다 아래를 쳐다본다.
난간 양쪽으로 부글부글 물이 끓어 오른다.
불현듯 '여기가 사람이 살고 있는 지상이 맞는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일본 나가사키(長崎)의 운젠(雲仙·일본국립공원 1호)산 중턱에 위치한 운젠화산지옥은 상상 속의 지옥을 재현해 놓은 듯하다.
사방에서 끓어 오르는 물거품과 화산연기는 불지옥 그대로다.
곳곳엔 바위지옥 아비규환지옥 여인지옥 참새지옥 등 다양한 형태의 지옥이 산재한다.
주변 환경에서 추측할 수 있듯,운젠의 온천은 그야말로 최고다.
물온도 섭씨 71도.일체 다른 물을 섞지 않을 뿐더러 땅 속에서 퍼올리지도 않는다.
마을 뒷산 바위틈으로 약수가 나오듯 노천의 온천이 그렇게 흘러나온다.
유황성분이 풍부해 물 속에는 유황꽃이라고 불리는 작고 노란 알갱이들이 떠다닌다.
나가사키현은 우리 근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에는 1945년 8월9일 11시 두 번째 원폭이 떨어졌고 대한민국은 며칠 후 해방을 맞았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아직도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더불어 일본 학생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수학여행 코스다.
지금은 평화공원이라는 조그만 기념물만 있을 뿐 어느 곳에서도 옛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시 피폭됐던 한국 동포들은 아직도 일본 정부의 의료보조금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더욱이 2세들은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단다.
역사의 끈질긴 악연이다.
나가사키는 공존의 땅이기도 하다.
이곳은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다.
공단과 농지도 함께 한다.
미쓰비시 조선소 등 대규모 산업시설 바로 옆 골짜기마다 조각 밭이 들어차 있다.
동서양의 문화도 잘 어울려 있다.
나가사키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선박이 최초로 들어왔던 곳.에도시대의 일본은 외국 문물을 배우기 위해 서양인들을 이곳에 모아 놓았단다.
그래서 퓨전스타일의 풍물이 많다.
'카스테라'는 유럽의 케이크가 이곳에 들어와 현지화된 빵이다.
유럽의 유리 문화는 유명한 '나가사키 가라스'를 탄생케 했다.
7만개의 돌로 만들었다는 시마바라(島原)성은 종교적으로 동서양이 맞닥뜨렸던 곳이다.
지금은 성내 천수각 전체가 기독교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지만 1691년 건축 당시엔 천주교 탄압의 중심지였다.
박해를 받던 천주교도들이 그 안에 성모 마리아 상을 감추기 위해 만들었다는 부처 모양의 관음마리아상은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일본 속의 네덜란드라 불리는 하우스텐보스는 나가사키 관광객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명소.잠실 롯데월드의 14배에 해당하는 49만평의 대지를 40만 그루의 나무와 30만 송이의 꽃으로 거리를 꾸몄다.
지난 1992년 세워진 이 테마공원은 우체국과 은행 등 17세기 네덜란드 왕궁과 거리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나가사키=글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