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공정성과 의리 .. 김중순 <한국디지털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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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순 < 한국디지털대학교 총장 president@kdu.edu >
미국 문화의 가치 기반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가 보기에는 미국 사람들의 가치기반은 '공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서부영화에서 보듯이 아무리 악한이라도 보안관이 주먹으로 쳐 그 악한이 넘어졌을 때,넘어진 악한을 자신의 발로 밟아 끝장을 낸다면 그 보안관은 비겁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관람하지 않을 것이다.
보안관이 악당에게 총을 쏠 때도 등 뒤에서 몰래 소리 없이 총을 쏘지 않는다.
뒤에서 몰래 쏘면 비겁하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공정성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관이 '의리(義理)'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배우고 가르친다.
세상에 몹쓸 사람은 의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정치에도 공정성보다는 심지어 범법행위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의리를 지키는 것이 '군자(君子)가' 할 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1988년 가을 미국 예일대에서 있었던 한·미통상관계에 관한 회의에 초대된 일이 있다.
나는 미국 통상전문가들에게 한국 사람들과 협상을 할 때는 한국 사람들의 중요한 가치관인 의리에 호소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했다.
1980년 말에서 1990년대 초 미국이 한국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담배를 사라고 '반 협박'을 할때다.
만일 미국 통상대표단이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전쟁 당시 당신들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가 도와주었으니 경제적으로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한 지금,우리 담배 좀 사주는 것이 의리에 맞지 않겠는가"라고 한국 사람들의 의리에 호소했더라면,담배를 피우지 않는 한국 사람들도 의리 때문에 담배 몇 갑 정도는 사줄 것이라고 했더니 참가자들은 내 말이 맞다는 것이었다.
공정성을 가치의 기본으로 삼는 미국 사람들은 공정한 거래를 요구하는 반면 의리를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이 의리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도 미국 사람들과 거래할 때 조급한 마음에 "여유를 주면 어떻게 해 보겠다"고 대답하지 말고,그들이 원하는 바가 공정하지 못하다면 공정하지 못한 점을 조목조목 들어 그들의 가치관에 호소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