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조사결과 지난해 금융계좌 추적건수가 무려 25만7천건에 달해 5년새 3.3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특히 이중 78%가 법원의 영장심사도 거치지 않은 행정기관의 계좌추적권 남발로 이뤄진 것이라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돼 왔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길 없다. 당초 범죄수사와 과세목적 등으로 엄격히 제한됐던 계좌추적권이 이처럼 남발되고 있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비밀보장을 전제로 도입된 금융실명제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고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마저 부당하게 침해하는 중차대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거래 정보를 누군가가 들여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가 매우 불쾌한 일일 뿐 아니라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위축시키는 등 그 부작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따라서 정부는 전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계좌추적권 남용방지를 위한 제도정비를 한시라도 미뤄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외환위기 이후 감사원 금감위 선관위 공직자윤리위 공정위 등으로 확대된 행정기관의 계좌추적권을 전면 정비할 필요가 있다. 93년 금융실명제 시행 당시만 해도 검찰과 과세당국에만 허용됐던 계좌추적권이 이처럼 확대된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정위가 외환위기 과정에서 3년간 한시적으로 부여받아 2년을 연장한 계좌추적권은 예정대로 오는 2004년 4월 폐지돼야 마땅하다. 계열사간 내부거래는 필요하다면 금감위에 조사의뢰가 가능하고 혐의가 분명한 경우 검찰에 고발하면 될 일이다. 이를 또다시 연장하거나 영구화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아울러 행정기관이 요청하면 계좌가 추적된 사실조차 최장 1년간 본인에게 알려주지 못하도록 돼 있는 독소조항도 반드시 고쳐야 한다. 통보유예기간을 대폭 단축하고,이 경우에도 법원의 심사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좌추적을 당하는 억울한 사례만이라도 방지할 수 있어 국민들의 불안감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계좌추적권 만능이라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을 버리고 '실명거래' 못지 않게 '비밀보장'을 중요시하는 금융실명제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행정기관마다 경쟁적으로 계좌추적권을 가지려 하는 것은 금융실명제 정신에 어긋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