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노령인구 정책 .. 최수권 <연세디지털미디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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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권 < 연세디지털미디어 대표이사 digitalav@digitalav.co.kr >
93세의 노모가 생존해 계시는 친구의 고민을 들었다.
그것은 쉽지 않은 딜레마였다.
아직 거동에 불편함은 없으시지만 사소한 질병이나 심신의 피로에도 병원 신세를 져야만 안심이 된다는 것이었다.
해가 지날수록 기력이 쇠잔해지는 것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는 것도 고민이었다.
그렇다고 가족 중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접어두고 노인과 함께 지낼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시골에 계시는 노인의 안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죄책감이 앞서는 데 묘안이 없다는 것이 친구의 고통이었다.
그래서 새벽이나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고 걱정이 떠날 날이 없다고 한다.
행여 또 입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자녀중의 누가 내려가서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걸까.
노모의 입장에서는 자식들에게 전화하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참고 참다가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하면서 하는 말씀이 또 가슴을 후벼오는 것이었다.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서 미안하다.
질긴 목숨을 접을 수도 없고 너희들에게 짐만 되는구나."
노모의 심정을 헤아릴 것 같으면서도 가장 듣기 싫은 말이어서 그때마다 슬픔과 짜증과 송구스러움이 교차된다고 한다.
노모의 정서는 도시의 아파트와는 맞지 않아서 몇 개월만 모시고 있어도 다리를 쓸 수 없을 정도의 허약 증세를 보이니,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난제중의 난제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친구의 고민은 유별난 것이 아니다.
의술의 발달,식생활의 개선으로 평균수명은 높아지고 노령인구가 증가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추세다.
그 일반적인 사회현상이 빚어내는 가족간의 갈등과 고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내 친구가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것은 믿을 만한 양로원시설의 국가적인 투자에 관한 것이었다.
혹간은 불효스러운 발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시설 좋은 양로원이 있다면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모시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자주 찾아 뵙고,여행과 외식기회도 갖는다면 더 낫겠다는 생각은 나무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최근 사회복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정책적인 지원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노령인구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과 사회의식의 고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꿈자리만 이상해도 아내는 장인어른 건강에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노부모 모시는 것이 내 친구 문제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