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냈다] 신세계 구학서 사장 (1) 日 주재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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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가 국내 대기업중 처음으로 윤리경영을 회사의 경영이념으로 선포한 것은 99년12월의 일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윤리경영은 기업들에 낯선 구호로 인식될 정도였다.
3년9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윤리경영은 재계의 화두가 됐다.
신세계에는 올들어서만도 KTF 삼성화재 동화기업 하나로통신 기업은행 코오롱 등 7개 기업 관계자들이 방문해 노하우를 배워갔다.
'윤리경영의 전도사'로 불리는 구학서 사장(57).
그는 어떤 계기로 다른 회사보다 먼저 윤리경영을 시작해 저만치 앞서가고 있을까.
지난 4일 신세계 본사에서 구 사장을 만났다.
구 사장은 "이제 큰 길에 막 발을 들여놓은 시작 단계로 점수로 따지면 60점 수준"이라면서 '우리는 해냈다'에 소개되는데 대해 부담스러워했다.
구 사장은 일본의 세무공무원 얘기부터 꺼냈다.
85년 그가 삼성물산 도쿄지사에서 관리부장으로 일할 때였다.
하루는 세무조사가 나왔는데 지금도 당시 세무 직원들을 잊을 수 없다.
"커피와 과일을 방에 넣어 줬더니 금새 되돌아온 겁니다.점심식사도 도시락을 싸 와서 먹더라고요.아마 커피 한 잔도 얻어 먹지 말라는 규정이 있었나 봅니다."
결국 세무공무원들에게 대접한 것이라곤 차(茶) 몇 잔이 전부였다.
얼마 후 세무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본 주재원들에게 사택을 얻어 주면서 왜 갑종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말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우겼다.
"오지 근무자들은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는데 한국인들에겐 외국땅인 도쿄가 오지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공무원들은 각종 판례와 법조문을 보여주면서 세금을 내야 된다고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감사의 표시로 저녁을 사겠다는 거듭된 제안을 일본 공무원들은 한사코 거절했다.
그런데 얼마 후 저녁을 함께 하자는 연락이 왔다.
자꾸 거절하면 외국인을 차별한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 국세청장에게 말하니 자신도 별도의 저녁을 사는 조건으로 허락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후 구 사장이 세무직원으로부터 같은 비용의 저녁 대접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일본 생활에 익숙해진 탓에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한 번은 사업하는 선배가 초대한 골프모임에 참석했는데 회사 비용으로 '그린피'를 처리하는 줄 모르고 자신의 '그린피'를 계산했다가 야단을 맞은 것.
"내가 초대했는데 왜 당신이 돈을 내느냐"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구 사장은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한국의 접대문화와 불투명한 거래관행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외환위기 당시 신세계가 출자한 종금사가 퇴출될 때와 신입사원 채용을 연기했을 때는 기업의 의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경영인으로서 이익을 내고 고용을 창출해야 하는데….윤리경영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 이런 쓰라린 경험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런 생각이 쌓여 99년9월 구 사장은 윤리규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윤리경영이란 새로운 항로를 향해 닻을 올린 것이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