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명일역점은 평당 매출로 따지면 전국 최고의 점포다. 9평 매장에서 하루 1백80만원의 매상을 거뜬히 올린다. 규모가 크다는 제과점도 하루 매상이 1백30만원이면 최고로 친다. 명일역점 주말 매상은 무려 2백50만원에 달한다. 문을 연지 올해로 6년째. 지하철 5호선 명일역 일대 '빵집 상권'을 거의 석권했다. 개업 당시 5개였던 경쟁 점포는 지금은 3개로 줄었다. 2개 점포는 손님이 끊기자 문을 닫았고 남은 점포들은 파리바게뜨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명일역점은 파리바게뜨 빵집을 열려는 예비 가맹점주들의 필수 견학 코스다. 본사는 빵집을 직접 둘러보고 싶다는 창업희망자들에게 주저없이 이 점포를 소개한다. 명일역점은 입구부터 다르다. 인조잔디, 생화 화분, 빵 나오는 시간표를 적은 칠판…. 고객들은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고 얘기한다. 다른 제과점 매장보다 두배나 밝은 화사한 조명, 그 때문에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빵들, 굵은 매직펜으로 써붙여 금세 눈에 들어오는 빵이름, 아기자기한 빵 디스플레이…. 빵을 고르던 한 손님은 "여기 들어오면 빵을 사지 않고는 못배긴다"고 말한다. 오후 3시. 제과점으로선 한산한 시각이다. 그러나 명일역점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손님 7,8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바람에 좁은 매장이 더욱 좁게 느껴진다. 그래도 짜증내는 손님은 없다. 빵이 아니라 '행복'을 사러온 사람들 같다. 카운터에 나란히 서 있는 박형복(45)ㆍ송정란(41)씨 부부. '호빵맨' 같은 박씨는 인심이 좋을 것 같고 여사장은 친절하고 상냥하다. 영락없는 빵집 주인들이다. 지금의 여유는 하루 아침에 찾아온게 아니다. 지난 98년엔 처음 해보는 장사에 매일 가슴을 졸여야 했다. 밤이면 서로 다리를 주물러주며 위로하곤 했다. 다행히 장사는 술술 풀렸다. 창업 당시 2억1천만원이던 자산은 이제 7억원대로 불어났다. 제과점 창업은 남편 박씨의 갑작스런 퇴직이 계기가 됐다. 13년간 다녔던 외국계 은행이 합병돼 감원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박씨는 화재보험 대리점을 1년간 운영하며 재기하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월급쟁이가 장사꾼으로 변신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보험 대리점을 접었다. 아내 송씨와 의논한 끝에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사업설명회를 찾아다니며 상담도 하고 창업서적을 닥치는대로 읽고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시식도 해보고… 온갖 아이디어를 다 짜냈죠. 제과점을 택하기까지 1년이 걸렸어요. 입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점포 잡으러 아내랑 한달동안 돌아다녔지요." 처음 6개월은 박씨가 주방에 들어가 빵을 구웠다. "주방은 한여름엔 섭씨 40도까지 올라가는 한증막이에요. 3년간 죽기살기로 매달렸죠.비용 아끼려고 아르바이트생도 최소한으로 썼지요. 그러다 보니 화장실 갈 시간도 없더군요. 다리에 쥐가 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아내 송씨는 "남편이 남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며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다"고 회고했다. 명일역점의 성공비결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적성에 맞는 업종 선택 △최고의 성실과 친절 △철저한 직원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박씨는 웬만한 여자보다 더 깔끔하다는 말을 듣는다. 아르바이트생이 있어도 청소는 자신이 해야 안심이 된다. 취미는 요리다. 박씨는 "성격으로 보나 스타일로 보나 제과점이 딱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송씨는 '성실과 친절'이 성공의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성실한 가게'란 평을 얻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손님이 없다고 해서 느긋하게 앉아 있으면 성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들려줬다. 명일역점은 또 케이크를 배달해줄 정도로 친절한 점포다. 송씨는 "다른 빵집에서 기분 나빴던 기억을 되살려 우리 가게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심혈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을 철저히 교육하는 것도 매출 증대와 직결된다. 명일역점은 연령대별, 용도별로 선호하는 빵이 무엇인지 분석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알려준다. 그래서 고객이 어떤 빵을 살까 망설일 때 아르바이트생들이 곧바로 조언해 준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