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해서 안 된다고 문을 내릴 순 없다. 구름 뒤에 숨은 해를 생각해야지."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전 회장은 지난 61년 자체 개발한 국산 라디오 1호의 판매부진으로 금성사의 존폐론이 제기되자 이렇게 말했다. 금성사는 이듬해 박정희 정부가 전국적으로 전개한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으로 기사회생했다. 이어서 60년대에 냉장고 TV 에어컨 세탁기 승강기류 등을 국산화한 종합전자회사로 발돋움했다. 현대의 창업주 정주영 전 회장은 평소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실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을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민지와 전후 폐허의 땅에서 세계적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들의 삶에는 뭔가 남다른 면모가 숨어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개척자들'(조동성 외 지음, 월간조선사, 1만8천원)은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포항제철 박태준, SK 최종현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일으킨 23명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다뤄진 인물은 LG 구자경, 동아일보 김성수, 삼양사 김연수, 경방 김용완, 대우 김우중, 동원 김재철, 기아산업 김철호, 두산 박두병, 화신백화점 박흥식, 롯데 신격호, 신도리코 우상기, 유한양행 유일한, 삼성 이건희, 개풍 이정림, 동양화학 이회림, 천우사 전택보, 강원산업 정인욱, 한진 조중훈 등이다. 대학교수와 CEO, 관료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존경받는 기업인, 국가발전에 공이 큰 기업인으로 뽑힌 이들이다. 사람에 따라 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삶에서 귀감이 될 만한 행적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은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하는데 썼다"고 했다. 인재경영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한 마디다. 기업이윤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추구한 기업가도 많았다. 유한양행의 유일한은 "기업은 나라와 민족의 것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유일한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눈을 감았으며 국세청이 감탄할 정도로 성실히 납세했다. 나라와 직장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삼애(三愛)정신'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던 신도리코 창업주 우상기 전 회장, 광부들의 사택에서 피아노 소리를 울리게 했던 강원산업 정인욱 전 회장 등의 이야기도 새겨볼 만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