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있을 때마다 역사 망언을 일삼아 왔던 에토 다카미(江藤隆美.77) 전 일본 총무청 장관이 12일 공개 강연을 통해 또다시 일본의 과거 침략 역사를 합리화하고 외국인을 멸시하는 망언을 늘어 놓았다. 에토씨의 이번 망언은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을 목전에 두고 터져나온`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한 것이었다'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정조회장의 망발에 연이은 것이다. 역사 인식을 둘러싼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한일 양국이 미래 지향적 관계 구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최근 수년간 뜸한 상태였다. 한일 공동 파트너십 선언과 월드컵 공동개최 등으로 자취를 감추는 듯했던 망언이 다시 이처럼 `버젓이' 고개를 든데는 고이즈미 정권의 유사법제 강행 관철이 상징하는 일본사회의 `신보수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위대의 역할 강화 등 전후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나름대로 견제해온 사민당등 진보 진영의 몰락과 그에 반비례한 일본의 과거회귀, `오만'에 가까운 고이즈미정권의 정국 운영 등이 예고하고 있는 '일본부활'과 북핵문제 등을 빌미로 한 본격재무장 등이 어우러지면서 한동안 조여졌던 망언의 고삐가 다시 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에토씨의 이날 망언이 한반도 전쟁 발생시의 난민 일본 유입에 대비한 치안 유지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나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에토, 아소씨의 망언을 일개 정치가의 해프닝성 발언이나 `확신범'의 반복된 망발 정도로 넘겨 버릴 일과성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소 망언이 파문을 일으킨 와중에서 노대통령의 일본 방문 첫날인 지난 6월6일열린 자민당 총무회에서 서슴없이 쏟아졌던 창씨개명망발 동조 발언은 이들 두사람의 망언이 빙산의 일각임을 보여준 것이다. 아소씨의 경우 자신의 발언으로 물의가빚어진데 유감을 표명했을 뿐 망언 자체는 철회하지 않고 있다. 자민당 원로 의원격인 에토씨는 지난 95년 10월 기자 간담회에서 비(非)보도를전제로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 통치 기간에 교육 확충 등 좋은 일도 했으며, 창씨 개명이 전부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발언, 결국은 총무청 장관직을 사퇴했다. 당시 망언에 대해서는 일본의 일부 언론까지 장관직 사퇴를 요구했었다. 한국의 거센 반발 등으로 장관을 마지못해 사임할 수 밖에 없었던 그는 그러나97년 지방도시 공개 강연에서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는 면단위 등의 행정구역통합과 다를 게 없다"고 발언,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12일 전해진 에토씨의 "한일합방을 국제연맹이 무조건 승인했다"는 발언은 당시망언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발언은 미국, 러시아 등 당시 열강이 한일합방에 대해 입장 표명이 없었다는점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의 홍상진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유엔 등국제기관에서 나온 한일합방에 대한 입장 표명은 1963년 유엔 국제법 위원회의 `을사5조약은 당초부터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보고서가 유일하다"면서 에토씨의 발언은 터무니없는 의도적인 역사 왜곡이라고 비난했다. (도쿄=연합뉴스) 김용수특파원 y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