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칠인 감독의 '싱글즈'(제작 싸이더스)는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가 만나는 접점에 위치한다. 지난해 개봉된 멜로물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결혼제도의 부조리함을 통렬하게 공박했다면 이 영화는 결혼의 부조리함을 알고 있는 적령기 젊은이들이 결혼을 배제한 채 연애를 즐기거나 홀로 아이를 낳아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과정을 비춘다. 영화는 결혼에 이르지 않는 사랑은 과연 실패작인가를 묻고 스스로 풍성한 유머를 섞어 '노'라고 답한다. 독신문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작금의 세태를 민감하게 반영한 트렌디 영화다. 두 싱글 여성 동미(엄정화)와 나난(장진영)이 이 영화를 이끈다. 싱글 남성인 준(이범수)과 수헌(김주혁)은 동미와 나난의 보조역이다. 두 여성의 의지에 따라 나머지 두 남성도 독신을 택한다. 남녀관계의 주도권이 여성에게 넘어가 있다. 한국영화에서 그리 흔치 않은 여성 중심의 영화인 셈이다. 이들 남녀를 맺고 풀어주는 관계의 핵심은 운명적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환각을 걷어낸 상태에서 '이 사람과 잘까 말까'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현실성이 관건이 된다. 그것은 낭만적인 사랑이 사라진 세대의 비극적인 초상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초연하고 꿋꿋하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와 다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네 명의 독신자들은 묘한 앙상블을 엮어낸다. 독신은 원래 타인과 성공적인 조화를 구태여 이루려 하지 않는 삶의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누구도 튀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며 자기 위치를 고수한다. 또 상대의 생각을 고려해 독신을 결정하면 상대도 독신으로 남는다. 감독은 독신이 '나홀로' 성취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간의 연쇄반응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11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