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동함대가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말로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이다. 제정(帝政) 러시아의 동방정책이 결실을 맺은 곳이 다름아닌 블라디(지배) 보스토크(동방)였다. 이곳에 도착한 7월3일 날씨는 여름철로 들어섰는데도 반팔 소매 밑으로 드러난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쌀쌀했다. 이광수가 '안개 낀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의 우리 식 지명)'라고 불렀던 당시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은 러시아가 새로 도입한 자본주의의 고단함을 말해주는 듯했다. 불친절한 공항 직원들의 모습부터가 그랬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문 3박4일 동안 작은 놀라움들이 이어졌다. 우선 '환율하락(루블화 가치상승) 속도'.공항 직원인 알렉세이 코바씨(34)는 돈 다발(루블화)을 들고 청사 밖으로 기자를 불러내 달러당 28루블로 환전해 주었다. 공항 직원의 암달러 장사도 의외였지만 두달만에 루블화 가치가 달러당 30루블에서 6.7%나 절상됐다는 데 놀랐다. 김영한 한국국제통상학회 사무국장(성균관대 교수)은 "급속하게 회복되고 있는 러시아의 최근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내 번화가에서 '맥도날드'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블라디보스토크의 고집처럼 보였다. 현지 가이드는 러시아 마피아가 사회 곳곳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서방 자본이 진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마피아는 대부분 해군 출신으로 다른 어느 마피아보다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 미국 자본도 뚫기 어렵다는 설명이 뒤따라 왔다. 러시아인들이 한국 정부의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던 것도 의외였다. 블라디미르 베르홀야크 국립극동대학교 한국학대학 학장은 "예컨대 경의선과 시베리아횡단열차(TSR)는 협궤 폭이 달라 연결이 힘들고,설사 연결하더라도 하역과 선적작업을 한번 이상 해야 하기 때문에 해운 운송에 비해 경제성을 갖기 힘들다"며 물류중심론을 일축했다. 한국의 부상을 일면 경계하는 듯한 그들의 생각은 '동방 지배'라는 말과 '동북아 중심'이라는 말 만큼이나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박수진 경제부 정책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