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조합원들이 1일 투표를 통해 집행부의 '선복귀-후협상' 방침을 추인함에 따라 철도파업 사태가 4일 만에 수습국면에 돌입했다. 노동계 '하투'(여름투쟁)의 중대 고비로 꼽혀 왔던 이번 철도파업에서 노동계가 사실상 '백기투항'함에 따라 노동계의 '하투' 강도가 급속히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하투가 힘을 잃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정치적 이슈를 내건 노동계의 잇단 파업에 등을 돌리고 있는 데다 정부 또한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으로 돌아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곳곳에서 흩어지는 '투쟁대오' =철도파업 이전에도 노동계의 '투쟁대오'가 흩어지는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대표적인 것이 7월 하투를 앞두고 지난달 26∼27일 실시된 민주노총 산하 금속연맹 11개 사업장의 금속노조 산별전환 여부 투표. 투표 결과는 오히려 노동계의 투쟁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1개 사업장중 BM금속(노조원 2백48명), 동양물산(2백73명), 대우상용차(4백37명)등 7개사가 산별전환에 동의했으나 이들은 대부분 중소 사업장에 불과했다. 반면 현대자동차(3만8천명), 대우조선(7천1백63명), 로템창원(1천8백명), 로템의왕(6백25명) 등 산별전환을 부결시킨 4개사는 모두 민주노총의 운동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형 사업장이었다. 특히 국내 최대 노동세력의 하나인 현대자동차 노조가 산별전환을 부결시킨 것은 민주노총으로선 '치명타'였다. 노동계 지휘부의 통제력 누수현상은 지난달 30일 열린 한국노총의 총파업에서도 재연됐다. 이날 시한부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는 한국노총의 주장(8만여명)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1만9백여명에 불과했다. ◆ 고조되는 노동계 위기감 =민주노총은 1일 1천5백여개 사업장에서 중식 규탄집회를 열고 철도분규에 공권력을 투입한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며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민주노총은 2일로 예정된 금속노조원 10만여명의 파업을 독려하는 한편 화물연대와 보건의료노조의 쟁의행위를 적극 지원키로 했다. 그동안 각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임단협에 대해선 한발 물러나 있던 것과는 큰 입장 변화다. 그만큼 사정이 다급해졌다는 방증이다. 노동계는 최근 조성되고 있는 파업반대 여론이 부담스러운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강공으로 나가다가는 정부의 강경 대응에 명분만 주게 된다고 보고 있다. 감정상으로는 훨씬 공격적인 투쟁에 나서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여러 제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노동계 처지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노동자를 무력진압한 정부를 응징해야 향후 투쟁에서 기선을 잡을 수 있다"면서도 "노조지휘부가 지금처럼 일선현장과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 하투는 겉만 요란하고 실리도 챙기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 주목되는 정부의 대응 =재계와 노동계는 정부가 철도파업 초기에 전격적으로 공권력을 투입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노조와의 대화거부와 공권력 투입을 '원칙의 고수'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철도 파업을 계기로 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는 이 기회에 몇가지 원칙을 분명히 해두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최근 △경제에의 악영향 △국민 불편 초래 △기존 합의 번복 △공무원 신분의 불법 파업 등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철도파업 사태만으론 정부의 정책변화를 단언하기엔 이르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철도파업 사태의 경우 정부가 양보할 부분이 별로 없고 명분에서도 노조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의 투쟁 등 향후 전개될 노동계 투쟁에 정부가 어떤 식으로 대응하느냐가 노동정책의 변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