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방일에서) 일본 정부와 국민들에게 동북아 평화와 협력의 새질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국회연설과 방송을 통해 이런 화두를 던졌다"고 말했다.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성과와 후속조치를 보고한 다음이었다. 왜 노 대통령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전제했는가. 9일 도쿄의 기자 간담회에서도 노 대통령은 "방일을 마무리하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첫 방문외교였고 상대가 미국이었던 만큼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은 행사였다. 그러나 여당인 민주당을 비롯해 노 대통령의 전통적 지지기반들은 일제히 불만을 쏟아냈다. 반면 야당과 보수적인 여론에서는 "수고했다"며 격려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 후에는 반대였다. 5월 미국방문때 '저자세,굴욕외교'라고 했던 쪽에서는 조용하다. 반대로 야당과 보수층에서는 적지 않은 비판을 가한다. '등신외교'란 공격까지 받았다. 한달이 채 안돼 '정상 외교'라는 한 분야를 놓고 지지자와 비판자가 거꾸로 됐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국민들의 코드' 가운데 어디를 맞춰야 할지 헷갈릴 만도 하다. 그러나 비판자와 지지자가 급변하는 것은 노 대통령이 보인 '실용주의 외교'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미국 가선 미국에 맞게,일본 가선 일본에 맞게'식의 실용 외교를 펼쳤다. 이 때문에 성급한 사람들이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런 '불만'이 언론에 부각되자 노 대통령은 부담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방일 때 기자들에게 "(과거사에 대해) 내가 말을 안해 일본이 적당히 넘어가는 것보다 국내여론이 더 무서웠다"고 말한 적 있다. 때마침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낮 KBS1라디오에,반기문 외교보좌관은 MBC방송에 출연해 방일성과를 주로 홍보했다. 9일밤에는 윤영관 외교부 장관도 KBS1TV의 심야 뉴스에 출연해 "성과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실용주의 외교의 한계점과 장점을 이제부터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 같다. 허원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