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남긴 문화유산은 그 명성만큼이나 현대 미술시장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 경매시장에서 거래된 그의 작품은 무려 8천2백80만달러(1천30억원). 하지만 가격 면에서 보면 피카소 그림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역대 최고가에 팔린 작품은 '청색시대'에 제작된 '팔을 꼬고 있는 여인'이다. 25호 크기의 소품인데도 5천5백만달러에 팔렸다. 반면 이달초 뉴욕 크리스티 메이저경매에 출품된 50호 크기 작품은 추정가가 50만∼70만달러였지만 인수자가 없었다. 피카소 그림은 대표작이냐 아니냐에 따라 값이 1백배 이상 차이가 난다. 미술품 구입시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점은 무엇일까. 피카소의 경우를 보듯 명성만 믿고 작품을 샀다간 실패하기 십상이다. '누구의 작품을 갖고 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작가의 대표작을 사는 게 투자가치 측면에서 훨씬 효과적이다. 이같은 흐름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우환 화백(67)과 김창열 화백(74)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기 작가들이다. 이 화백은 1970년대의 '선''점' 시리즈를 시작으로 80년대에 '바람',90년대 이후 '조응(Correspondence)' 시리즈 등 시대별로 다른 작품을 선보였다. 김 화백은 '물방울' 시리즈를 70년대부터 그려오고 있다. 이 두 작가의 공통점은 구작이 신작보다 훨씬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 이 화백의 '선' 시리즈는 IMF사태 이후 값이 4배 가까이 올랐다. 지난 98년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20호 크기 작품은 2천만원에 거래됐다. 호당 1백만원선이었다. 그러나 2001년 경매에선 15호 작품이 4천5백만원에 팔렸다. 최근엔 호당 4백만원선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점' 시리즈는 '선' 시리즈 가격의 70% 수준이다. 지난해 경매에 출품된 20호 작품이 5천만원에 낙찰됐다. 비교적 근작인 '조응' 시리즈는 컬렉터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 못하다. 지난해 5월 경매에 나온 50호 크기는 1천6백만원에 거래됐다. 호당 30만원에서 50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이 화백의 작품은 구작이냐 신작이냐에 따라 가격차가 10배나 난다고 보면 된다. 김 화백의 '물방울' 시리즈도 70년대 구작이 인기가 높다. 2001년 4월과 5월에 실시된 경매에는 90년대 작과 70년대 말 작품이 나란히 출품됐다. 낙찰가격은 공교롭게도 똑같이 2천2백만원.90년대 작은 1백20호였고 70년대 작은 20호였다. 작품 크기로 비교하면 구작 가격이 신작보다 여섯배나 높다는 얘기다. 서울옥션의 이학준 상무는 "한 작가의 대표작과 그렇지 못한 작품과의 가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강조한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