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남쪽 유트레흐트시.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를 타면 30분 가량 걸리는 기독교노동단체연합(CNV.네덜란드에서 두번째 규모의 상급노동단체) 사무실을 찾았다. 통상 1월부터 5월까지 이어지는 노사 임단협 기간중이어서 분위기가 험악할 것으로 우려했으나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피터 오우덴나르덴 CNV 정책개발 담당자의 첫마디는 걸작이었다. "지난 연말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2.5% 인상률이 준수되도록 산하 노조를 독려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산하에 11개 산별노조를 거느리고 있는 상급 노동단체 치고는 너무나 태평스런 얘기로 들렸다. 한국 같으면 산하 노조의 전투성을 한창 고취시켜야 할 판인데…. 네덜란드는 통상 노사정위원회(SER.Social Economic Council)에서 정한 인상률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개별기업 노조가 자율적인 협상을 벌인다. 따라서 협상에 어려움이 별로 없다. 암스테르담 상공회의소의 리크 블리커 노무 및 인력담당 팀장은 "2.5%는 노사정이 가장 합리적인 수준으로 여겨 도출한 인상률이어서 지켜질 것"이라며 정책담당자의 말을 거들었다. 올해 네덜란드 경제성장률(0.75%)과 물가인상률(2.5%)을 감안한 인상률이어서 노조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못 먹어도 고(go)'라는 식으로 일단 높은 인상률을 제시하며 파업까지 불사하는 한국의 노사현장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극심한 노사분규의 몸살을 앓다가 80년대 이후 급격히 안정을 찾은 일본으로 건너가 보자. 도요타자동차 노조가 최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려 세계 자동차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도요타 노조는 지난해 회사 순이익이 전년보다 53.4% 증가한 9천4백46억엔에 달해 3년 연속 최고치 행진을 기록했으나 올해 기본급 인상을 덜컥 동결해 버렸다. "국내외 경제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조가 판단한 결과"라며 코호 신야 기획홍보국장이 엄살을 떨었다. 일본 도쿄 소재 신일본제철의 리키오 코즈 노조위원장은 한술 더 떴다. 회사측에서나 내놓을 법한 주장이 그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흘러 나왔다. 그는 "해마다 임금이 인상되는 자동승급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연령이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월급이 급격히 불어나 결과적으로 회사에 부담을 안겨줘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올해 한국에서 노사관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노조의 경영참여 문제는 이곳에서 어떻게 비쳐질까.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다나카 유리 국장은 "노조가 순수한 노동운동 외에 회사이전이나 인사권에까지 구체적으로 간여하는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사관계가 불안한 상황에서 경영에 참여한다고 협의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50~60년대 극심한 분규를 겪었던 미쓰비시중공업도 이러한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야마나 미치히로 노조 서기장은 "노조의 경영참여 문제는 그 범위가 문제라고 본다"며 "회사측이 직원들의 전근이나 사업장 이동시에만 노조측과 협의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노동권과 경영권을 혼동해 직접 경영을 감시하거나 이사회 등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더욱이 이를 빌미로 한 파업은 결국 노조 스스로의 목을 죄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표적 모터사이클 업체인 할리데이비슨은 합리적인 노사경영협의회 운영으로 기사회생한 케이스다. 70년대 후반 혼다, 야마하 등 일본 모터사이클 업체들의 미국시장 진출로 부도위기까지 몰렸으나 생산라인 감축과 대대적인 인력조정을 감행해 전화위복했다. 노사동수의 경영협의회를 발족하고 인력조정과 경영현안 해결 등의 해법을 찾았다. 그렉 팔머 할리데이비슨 노사경영협의회 부회장은 "노조 자신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오히려 손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며 "회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요구사항을 노조가 신중히 선별해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트레흐트(네덜란드).도쿄(일본).위스콘신(미국)=김홍열.김형호.이정호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