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 바삭~ 입에 안기네 .. '돈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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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라고 하면 70~80년대를 지내 온 사람들은 누구나 "경양식"집을 떠올린다.
그 시절 최고의 데이트는 일명 "또랑"이라 불리던 레스토랑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돈까스를 "써는 것"이었다.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빵으로 하시겠습니까?"로부터 시작되는 주문의 절차는 가슴을 콩당콩당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고,혹시 실수라도 할까 어려워하며 왼손 오른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교양 있게 잡고 조심스레 "폼"잡던 추억의 맛.이제는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한끼 식사가 되어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맛깔스럽게 때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각기 다른 개성의 돈까스 집 세 곳을 소개한다.
◆가쓰야(서울 종로구 인사동 사거리·02-7373-565)=널따란 주차장 겸 앞마당을 지나 실내로 들어가면 심플한 인테리어가 반긴다.
히레가스와 로스가스 치즈가스 생선가스 등이 메뉴에 올라있다.
두 가지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점보가스 정식은 히레가스와 생선가스가 푸짐하게 담겨져 나오고 밥과 미소시루가 곁들여진다.
노릇하게 튀겨진 히레가스를 한 입 베어 물고 나면 이 집에 쏟아지는 찬사를 가늠하게 된다.
바삭거리지만 날카롭지 않은 튀김옷이 입천장을 괴롭히는 일도 없고 적당히 익은 안심은 폭신하게 씹힌다.
주방을 맡고 있는 이 집 사장의 노하우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고기가 익는 정도를 무게로 가늠하는 것.
신비하게 느껴지는 이 기술 덕에 손님들은 언제나 보드랍게 바삭한 돈가스를 즐길 수 있다.
생선가스 역시 탄력이 좋다.
속살이 흐트러지 듯 무너지지 않고 씹을 때마다 결이 느껴질 만큼 선도가 높다.
대포 한 잔 걸치기에는 돈가스전골이 어울린다.
전골 냄비에 로스가스를 깔고 어묵이며 야채를 넣어 한소끔 끓여주는 데 촉촉하게 젖은 로스가스가 입에 척척 감긴다.
서너 명이 소곤거리며 한두잔 걸치기에는 이만한 안주가 없을 듯싶다.
◆육미집(서울 중구 을지로 1가 삼성화재 아케이드·02-773-4406)=점심메뉴 선택에 골치를 앓는 무교동 일대의 직장인들은 '뭔가 색다른 맛'을 즐기고 싶을 때 육미집 앞에 줄을 선다.
쇠고기와 모차렐라 치즈가 어우러진 '비프콤보가스'를 먹기 위해서다.
자리에 앉으며 '콤보'하고 외치면 주방장이 냉장고에 숙성시켜 놓은 '콤보가스' 두 덩어리를 꺼내 경쾌하게 기름 속으로 밀어 넣는다.
건진 망으로 기름기를 탁탁 털고 도마에 올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는 데 가까운 테이블에 앉으면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접시가 도착하기 무섭게 한 점 집으면 팔을 한껏 치켜 올려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해야 할 정도로 모차렐라 치즈의 탄력이 좋다.
이 집의 인기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얇게 썬 쇠고기 안심으로 치즈를 감싸 둘둘 말고 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데 TV속 피자 CF처럼 늘어지는 치즈와 쇠고기가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맛을 만들어낸다.
재첩을 넣어 시원함을 살린 미소시루는 자칫 느끼해지기 쉬운 입안을 말끔히 정리한다.
워낙 손님이 많고 시간에 쫓기다보니 종종 튀겨지는 정도에 편차가 생겨 거칠어지는 경우가 있다.
◆서울돈까스(서울 혜화동 경신중·고교 뒤 언덕·02-766-9370)=주말이면 혜화동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언덕 일대를 거대한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곳이다.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야만 돈가스 한 접시를 먹을 수 있는데 주문을 하기가 무섭게 내오는 크림수프는 예전 '경양식'집에서나 보던 스타일이라 잔재미가 느껴진다.
이어서 돼지고기를 두드리고 얇게 펴서 튀긴 30cm가 넘는 돈가스와 밥,야채,마카로니가 쟁반 만한 접시에 담겨져 나온다.
썰어져 있지 않으므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작업'에 들어간다.
오래간만에 즐기는 손맛에 여기저기서 까르르대느라 정신이 없고 새콤하고 고소한 캐러멜 색 소스가 덮인 돈가스를 한 입 물면 어린 시절로 '순간 이동'을 한다.
비스킷처럼 바삭거리면서도 이내 촉촉해지는 그 시절 돈가스의 맛이 어렴풋하게 전해진다.
최고급 돈가스 집들과 육질이며 소스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아이들에게 지나간 아빠 엄마의 돈가스에 얽힌 추억들을 얘기해 주며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김유진·맛 칼럼니스트 showboo@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