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11시30분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수백대의 트럭들이 늦은 봄날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화투패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오수를 즐기는 사람들,먼 산을 바라보는 사람들…2평 남짓한 사무실마다에선 차주들도 평온함속에 깊이 파묻힌 모습이다. 또다른 한켠에선 이어폰을 꽂은 알선업자들이 전화기와 씨름을 벌이고 있다. "이 기사, 전화번호 하나 적어봐, 플라스틱 수지이고,031에 …용인 2t,평택 1t,잠깐만 다른 전화받고,여보세요…" 대기중인 차주들이 지방에 싣고갈 화물을 수배,연결시켜주는 것이다. 3백여 화물알선업체가 운집해 있는 터미널의 평상시 모습이다. 온 나라의 운송체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화물연대 사태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알선업자들의 속은 시꺼멓게 타있었다. 한결같이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다단계 알선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졸지에 '공공의 적'으로 내몰리고 있어서다. "우리요,도둑놈들 아닙니다. 집 한 채 장만해놓고 있는 사람이 20%도 안됩니다." 송상섭 서울화물자동차 운송주선협회 지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다단계'라는 용어 자체에도 반대합니다. 80∼90%가 화주→운송자회사→알선업체의 2단계를 거치고 있습니다. 차주들이 왜 화물터미널을 찾겠습니까. 빈차로 내려가지 않으려면 우리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부일물류(주) 김일수 사장은 운송업계가 "시장원칙이 철저히 지배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급한 화물을 보내기 위해 화주와 계약한 운임에 웃돈을 얹어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화주(운송자회사)로부터 받는 어음(최소 70일짜리)이나 화물손상분도 자신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우리도 화물을 적재적소에 배송하는 전문가 집단입니다."(부산종합화물 백대준 과장) 다단계 알선 철폐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정부관료들이 귀담아 들을 대목이 아닌가 싶다. 김병일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