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동 전문기자의 '유통 나들목'] 日 유통업계 '자존심 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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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일본 오사카 중심부에 있는 기업혁신센터 대강당.
일본 유통과학대가 주최한 '아시아 유통 컨퍼런스'가 이곳에서 열렸다.
행사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인사는 나카우치 이사오 전 다이에 회장.
일본 최대 유통업체였다가 지금은 구제금융으로 연명하는 다이에의 창업자다.
나카우치 전 회장은 한때 '일본 유통업계의 자존심'으로 통했다.
지난 70,80년대에는 "미국 월마트를 추월하자"고 소리높여 외치기도 했다.
그는 유통업계 최고경영자로는 드물게 세계적인 석학들과 토론을 마다하지 않는 학구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설립한 유통과학대의 이름도 '유통은 과학'이라는 지론에서 비롯됐다.
나카우치 전 회장은 82세의 고령에도 불구,이날 오후 5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담담한 표정이 흔들린 것은 삼성테스코 이승한 사장의 기조연설에 이은 토론시간.
패널리스트로 나선 사람은 이 사장과 존 도슨 영국 에든버러 경영대 교수,스티브 벌트 영국 스털링대 교수,무코야마 마사오 유통과학대 교수 등 4명이었다.
이 사장은 객석을 가득 메운 일본 유통업계 관계자들에게 뼈아픈 지적을 했다.
그는 경제위기에 접근하는 한국과 일본의 대응자세를 '불끄기'에 비유했다.
"한국이 단기간에 IMF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불이 났을 때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불을 끄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반면 일본은 큰 불이 아니라고 자위하며 불 끄는 방법을 논의하느라 세월을 허비해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 사장은 일본 유통업계가 좀 더 강도높은 개혁을 하지 않으면 월마트 까르푸 등 구미 소매업체들의 공세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저녁 나카우치 전 회장은 측근들을 물리치고 이 사장과 단둘이 식사를 했다.
다음날 그는 유통과학대 관계자들에게 이 사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박학다식한 그가 타인을 극찬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행사가 끝날 무렵 실시한 앙케트 조사에서 참석자들의 만족도는 85%가 넘었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다른 나라 경영자와 학자들의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였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같은 '자존심 버리기'는 경제위기의 해법에 목말라 하는 일본 유통업계의 고민이 얼마나 큰가를 방증하는 게 아닐까.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