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을 좋아하는 우린,허구가 판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가짜대통령을 뽑아놓은 거짓 선거결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부시 대통령,부끄러운 줄 아시오." 올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으면서 던진 마이클 무어 감독의 일갈은 전세계 평화주의자들의 가슴에 파고 들었다. 무어 감독은 수상작 '볼링포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을 촬영하는 동안 미국문화의 폭력성과 위험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55주년 기념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올해 전미 언론이 선정한 올해의 10대 영화,전미 작가협회 최우수 각본상,프랑스 세자르영화제 최우수외국어영화상 등을 잇따라 받았다. 인터넷 영화전문 IMDB사이트의 네티즌 별점도 10점 만점 중 8.9점을 얻었다. 무어 감독의 독설만큼이나 주제의식은 신랄하며 코믹한 구성요소까지 곁들여져 있어 웬만한 극영화보다 재미있다. 미국의 이라크침공이란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미국문화의 광기와 제국주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볼링포콜럼바인'은 미국 콜럼바인의 한 고교에서 발생한 학생들의 총기난사 사건을 중심으로 미국내 총기문화 실태를 고발한 작품이다. 사고후 각계 전문가들은 총기난사의 원인으로 마릴린 맨슨의 록음악,폭력성 짙은 비디오게임,잘못된 가정 환경 등 일상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영화는 '총의 천국'인 미국인의 총기집착증에서 원인을 찾아낸다. 감시카메라에 담긴 총격사건 현장,사고에 사용됐던 총알을 판매한 K마트에 대한 희생자들의 방문,범죄를 흑인 탓으로 돌리려는 사회의 편견,이웃 캐나다의 상대적으로 안전한 삶,가정용 폭탄을 제조한 미국의 말썽꾸러기 등을 직접 탐방해 생동감있게 전달한다. 특히 극우보수의 중심집단인 전국총기협회(NRA) 찰턴 헤스턴 회장과의 인터뷰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헤스턴은 사고현장에서 집회를 열고 '최상의 방어수단'으로 총기소유를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총격사건의 희생자들과 총기소유로 인한 폭력성 문제를 거듭 거론하자 '미국은 피로 쓴 역사'란 군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꼬리를 내리고' 달아나고 만다. 총기지지에 대한 허약한 논리,자국민들에게 끝없이 공포심을 조장하는 한편 외국에 폭력을 수출하는 미국 정치인들과 군산복합체의 실체 등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24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