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相民 칼럼] 경영권 불안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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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은 한국기업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한 해로 기록될까.
세계사에서의 1848년과 비슷한 해가 될 공산은 없는가.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고 유럽 도처에서 혁명의 불길이 꼬리를 물었던 해,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는 등 한때 과격한 사회주의적 행동가였던 조지 오웰이 그 해에 제시됐던 관념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현실을 빗대며,48이라는 숫자를 뒤집은 '1984년'이라고 이름붙인 소설로 고발했던 전철을 되새기면 우울해진다.
기업경영과 지배구조에 대한 대변혁적 요구가 쏟아지고 있는 국면이다.
온갖 곳 사방팔방에서 기존의 틀을 헐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경영참여라는 명목으로,시민단체는 투명성을 내걸고,정부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여기에 갖가지 형태의 외국자본들은 한국 기업지배구조를 둘러싼 국내 계층간 간격을 교묘한 방법으로 파고들려 하고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정말 갈피를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각 곳에서 쏟아지는 요구가 서로 상반되는 양상마저 없지 않아 더욱 그렇다.
카드사 증자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대기업그룹별로 많게는 1조원 규모의 자본확충을 강요하고 있는 반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그룹계열사들이 같은 계열의 카드사 증자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외국인 지분만도 절반이 넘는 주주구성을 감안하면 실제로 주주들의 동의를 받아 증자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증자참여 포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엄청난 규모의 부실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는 비판이 나올 것은 자명하고,카드사 증자 차질-금융시장 대혼란으로 어떤 결과가 빚어지게 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는 미국식 주주중심 자본주의를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형태로 바꾸라는 것이다.
독일식 감사위원회 체제가 도입되건, 노조위원장의 이사회 참석 요구가 받아들여지건 기업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가 오게 될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런 노조쪽 요구가 꼭 받아들여지리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단체협상에서 관철할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는 민노총 등의 움직임을 감안하면 단기간 내에 사그라들 것같지도 않다.
'SK의 개혁을 추구한다'고 나선 소버린자산운용의 사례도 한국 대기업 지배구조에 태풍의 눈이다.
SK주식 14.99%를 매입해 0.01%만 더 취득하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SK가 외국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SK텔레콤 주식 의결권 행사에 장애가 발생한다는 점을 노린 저들의 수법을 생각이나 해본 사람이 SK그룹에선들 몇이나 될까.
외국자본의 통신업 지배를 막기 위한 법규정을 역이용,SK텔레콤 지배주주를 지배하려는 전략은 참으로 탄복할 만하다.
저들의 교묘한 M&A전략이 꼭 SK에만 국한된다고 단정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왜 통신사업법을 고쳐 외국인 지분이 10% 이상이더라도 실제로 내국인이 지배하는 법인은 내국인으로 볼 수 있게 예외규정을 두지는 못하는지, 정부는 구경만 해도 좋을 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한도를 초과해 보유한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 외국인들의 M&A를 부추긴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외국인이 10% 이상 취득하면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인정,출자한도 초과에 따른 의결권 제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9.9%만 사고 국내의 다른 투자가와 연합해 적대적 M&A에 나선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기업지배구조의 안정은 기업의욕 활성화를 위한 기본전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눈을 뜬채로 지켜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적대적 M&A에 당할 수밖에 없게 돼 있는 여건이라면 누가 애써 기업에 집착하려 들 것인가.
여기에 더해 금융업종의 계열사에 대한 계열분리명령 청구제가 도입된다면 국내기업인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어떠할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소버린도 SK의 투명성을 내걸고 있지만.명분과 구호가 오늘 기업을 보는 눈과 잣대의 전부여서는 곤란하다.
숱한 모순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업은 기업인이 맡아야 하고 기업지배구조도 기업 스스로의 판단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