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주)의 1대 주주가 된 크레스트 시큐리티스는 치밀한 계획 하에 SK그룹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착실히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크레스트는 지난 11일 오후 금융감독원에 낸 정정보고(일반투자자-주식 등의 대량보유.변동보고서)를 통해 자사의 자본금은 지난 10일 공시한 1천9백3억원이 아니라 1백98억원이라고 밝혔다. 하루새 자본금이 10분의 1로 줄어들어버린 셈이다. 정정공시가 사실이라면 크레스트는 자본금 2백억원에 불과한 소규모 펀드다. 그런 펀드가 보름새 자본금보다 7배나 많은 1천3백79억원어치의 SK(주) 주식을 매집했다는 얘기다. 당시 SK(주) 가격이 꾸준히 오르던 상황임을 가정하면 정상적인 투자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게 증권가 분석이다. 크레스트는 추가 매입을 통해 SK(주) 지분을 정확히 14.9% 확보하는 방법으로 SK(주)와 SK텔레콤에 대한 지배력을 동시에 확보하게 됐다. 투자금액은 총 1천7백억원대다. 자본금 2백억원짜리 회사가 8배가 넘는 자금을 동원해 투자를 단행했을 때는 그만큼 큰 투자수익을 확신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크레스트는 이제 SK그룹 주요 계열사보다 높은 지분율로 1대주주로 올라서며 SK(주)에 대한 발언권을 최대한 강화하게 됐다. 또한 SK(주)가 외국인 투자기업이 될 경우 SK텔레콤의 지배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볼모로 SK텔레콤에 대해서도 입김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크레스트는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온 참여연대와 접촉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소버린(크레스트의 모기업)측은 참여연대가 지난 수년간 SK텔레콤의 경영문제를 일관되게 제기해 왔다는데 주목한 것 같다"고 말해 크레스트가 SK텔레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음을 시사했다. 정태웅.이건호 기자 redael@hankyung.com